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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21. 2021

노을과 섬이 만나는 곳

12구간(4.6)

무릉리 마을에서 해변으로 가는 길은 온통 마늘밭이다. 간혹 양파와 양배추 밭이 있고 보리밭도 있기는 하지만 가는 곳마다 마늘이 무릎까지 자라 곧 수확을 해야 한다. 양파도 지금이 수확철이다. 양파밭을 지날 때면 수확이 끝난 밭이지만 양파 냄새가 많이 난다.


바람이 불면 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이 바람 일렁거린다. 보리가 바람에 부드럽게 일렁일 때 가장 아름답다. 무릉2리에서 마을길로 가면 밭 가운데 신도연못이 나타난다. 근처 밭농사는 이 연못의 물을 이용하는 듯하다. 연못을 지나면 녹남봉을 오른다. 녹나무가 많이 자라 녹남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오름으로 정상부위에 커다란 분화구가 있다. 분화구를 지나 반대편 마을 쪽으로 내려오니 문 닫은 분교가 나온다. 아이들이 뛰놀던 운동장은 잡초로 덮여있고 교사 건물  입구에는 산경도예라는 간판이 달고 있다. 풀밭으로 변한 운동장 가장자리 벤치에 앉아 잠시 다리 쉼을 하였다. 바다가 마늘 밭 너머로 보이는 이쁜 학교였다. 준비해 간 과일로 요기를 하며 잠시 쉰 후 바닷가로 나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마을을 지나고 해변도로를 건너면 숲 사이로 난 해안길로 나간다. 도구리 해안이다. 밀물에 들어왔다가 썰물에 도구리에 물고기와 문어들이 갇힌다고 한다. 해안길은 신도 포구까지 이어지고 신도 포구에서는 다시 농로를 지나 수월봉으로 오르게 된다. 표고 78미터의 수월봉은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정상에 기상관측소와 정자가 있어 멀리서도 잘 보인다.


수월봉의 정자 앞에서 바다 쪽으로 서면 차귀도, 죽도, 눈섬, 당산봉이 한눈에 보이고 반대편으로 돌아보면 가까이에는 산방산이 보이고 멀리는 한라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월봉 아래 해안길은 엉알길이다. 파도에 씻긴 절벽이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차귀도가 지척인 엉알길은 바다와 섬 그리고 절벽을 감상하기에 좋은 산책길이다. 해 질 녘 이 길을 걸으면 하늘과 구름을 붉게 물들인 노을과 차귀도의 모습에 왜 제주도에 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엉알길 끝머리의 자구내 포구는 제주도의 유명한 일몰 감상하는 포인트중 하나다. 포구 뒤에는 당오름이라고도 불리는 당산봉이 버티고 있다. 당산봉 정상부위는 생이기정이다. 새들이 날아오르는 절벽이란  뜻이다. 바람 부는 당산봉 길을 휘돌아 걸으며 내려다보는 차귀도는 시선의 위치에 따라 매번 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섬과 바다의 풍광을 즐기며 당산봉 절벽길을 걷다가 내려서면 용수포구다. 이곳에서 보는 차귀도는 한 마리의 거대한 고래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모습이다. 오늘은 용수포구에서 걷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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