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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호 May 23. 2021

선인장의 여행

14구간 (4.9)

무파로를 한림항에 주차시켜 놓고 버스를 탔다. 저지예술 정보화 마을에 있는 14구간 시작점으로 간다. 14구간 시작점에 있는 올레 안내소 직원이 반가이 맞아준다. 13구간 종점이자 14-1구간과 14구간의 시작점인 이곳에 3번이나 왔으니 얼굴이 익은 탓이다. 직원이 내민 새 방명록의 첫 페이지에 올레 소감을 적었다. 커피와 과자도 대접을 받았다. 올레 안내소에 계시는 직원분들은 하나같이 친절하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올레 두건을 사서 목에 두르고 걷기에 나섰다.


길은 저지마을을 지나 중산간 밭 사이로 이리저리 이어진다. 밭길이 끝나면 숲길이 이어지며 저지오름에서 멀어진다. 이곳의 숲길은 곶자왈 길이다. 숲 사이로 자갈이 울퉁불퉁 이어져 쉽게 걸을 수 없는 곳이 많다. 숲길을 나서면 시멘트 포장길이 나오고 다시 풀밭으로 난 길로 들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눈앞에 여러 대의 풍력 발전기가 나타난다. 중산간에도 바람을 이용하기 위해 발전기를 설치해 놓았다.


한동안 걷다가 나타난 쉼터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다. 인사를 하고 곁에 앉았더니 간식거리를 내민다. 올레에서는 길거리 인심이 후하다. 나도 준비해 간 사과와 오이를 꺼내 나누어 먹었다. 잠시 다리 쉼을 한 뒤 무명천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오니 길가에 선인장 밭이 나타난다. 월령리 선인장 군락지다. 바닷가에 자생하는 선인장은 멕시코에서 해류를 따라 이곳까지 왔다는 안내판 설명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곳에 와서 싹을 틔운 선인장의 생명력에 경외심이 생긴다.


포구 마을을 따라 해안으로 걸으니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중산간 길을 걷다가 해안으로 나오면 탁 트인 바다가 좋다. 해변이 아름답고 바닷물 색깔도 이쁜데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서있어 경치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제주도는 자체 생산 전력이 남아돌아 육지로 보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운행을 중단한 발전기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남쪽으로는 바다 한가운데 십 여기의 발전기가 있고 북쪽으로는 해변에 한대의 거대한 발전기가 바람을 맞으며 돌고 있다. 점심때가 지나 해변의 카페에 들어가 오메기떡 두 개와 미숫가루 한잔으로 요기를 했다. 마땅한 식당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요기를 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해안에는 검은 현무암 사이로 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옆을 지나 검은 현무암 위로 난 길을 따라가니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선다. 시멘트 포장길이 운치는 없지만 바위길보다는 걷기에 편하다. 월령리 포구에서부터 보인 비양도가 함께 길을 따라나선 듯 모습을 바꾸며 걷는 길 옆을 따라오고 있다.


한동안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금능해변에 닿는다. 하얀 모래밭과 비양도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협재해수욕장은 금능해수욕장 바로 이웃이다. 모래가 날리지 않도록 넓은 해변을 비닐로 뒤집어 씌우고 모래주머니로 눌러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옥색 물빛이 아름다운 곳이다. 해수욕장을 가로지르고 이어지는 사구 위로 난 길을 걸으며 비양도를 바라보면 걷는 즐거움이 행복함으로 바뀐다.


이어 해안가 마을을 지나면 한림항으로 이어지는 4차선 대로가 나온다. 이 대로를 따라가면 아침에 차를 세워둔 한림항 여객선 터미널이다. 한림은 제주도 큰 항구 중 하나다. 지금까지 본 여느 포구와는 달리 크고 작은 배들이 항구에 가득하다. 이곳 한림항에서 오늘 걷기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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