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食)에 대한 탐미, 매일의 일상을 스쳐가는 풍요로움에 대하여
의(衣).식(食).주(住)
인간생활을 향유하는 데에 필수요소로 일컬어지는 것들이다.
그중에서 굳이 중요도에 경중을 따진다면 난 주저 없이 식(食)을 꼽고 싶다.
옷은 당장에 없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는 갈 수 있다. 집이라는 개념은 현대에 들어 공간이라는 개념으로 탈바꿈하여 캠핑, 차박 그리고 집안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다양한 공간의 변칙적인 활용을 통해 그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졌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보기엔 모호해졌다.
식이 없다면 당장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점점 허기가 지고 쇄약해지며 결국엔 삶의 동력을 잃어버린 신체는 굶주림으로 쓰러지고야 만다. 무인도에서 오랫동안 표류하며 생존한 사람들.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탄광 붕괴 사고에서 생존한 사람들도 결국엔 식을 해결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식의 개념은 이런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필수불가결함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 위에 욕구, 미학이 더해져 인류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여기에 삼시 세 끼라는 말처럼 그 고민과 해결을 위한 시간의 간격이 의나 주에 비할 바가 아니기에 더욱 삶에 밀접하게 녹아 있다.
식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올라섬은 의와 주를 통한 것에 비할바가 아니다. 아무리 물가가 오른다 해도 한 끼 식사정도는 어지간한 고급 레스토랑이라 할지라도 즐길 수 있는 빈도는 비록 낮을지언정 충분히 꿈꾸고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애피타이저, 본식, 후식으로 나누어지는 평형의 세계. 분식이나 간편식으로부터 고급 코스요리에 이르기까지의 수직의 세계. 식이 가지는 이런 수직과 수평의 세계가 혼재한 다채로움은 행복한 고민과 선택을 통해 잿빛의 무료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화사하게 덧칠해 준다.
식에 있어서만큼은 탐미주의자이고 싶다.
때로는 가볍게 그저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때로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미식을 오감으로 느끼기 위해
즐거운 고민을 통해 삶이 풍성해지는 경험을 식을 통해 느끼고 싶다.
식의 풍요로움 속에 삶의 의미를 찾고, 식의 본질을 바탕으로 건강을 찾고, 식의 다양함을 통해 미적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살기 위해' 한끼를 때우듯 먹기보단 '잘 먹기 위해' 사는 일상이고 싶다.
먹기 위한 선택의 시간이 누군가에겐 고역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설렘과 행복의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기에 후자인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식은 일상과 가장 밀접해 있고, 식재료를 제공하는 이, 식을 창조하여 제공하는 이, 이를 즐기고 맛보는 이들과의 소통과 화합의 장이기도 하다. 그 화합의 장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써 인류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고 나의 소양 역시 더욱 깊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늘도 정오가 되면, 그리고 일상을 마무리하고 하루가 저무는 저녁이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혹은 다른 이들에게 이 한마디를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날 것이다.
“밥 먹고 합시다.”
이 한마디의 의미가 각자에게 좀 더 다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