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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17.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7. 결정저울(cost-benefit analysis) 사용법

  결정저울은 환자분께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판단을 어려워할 때 제가 진료실에서 함께 그려보는 표입니다. 이 표는 아래 그림처럼 생겼습니다.

  이 표를 그려봄으로써 어떤 행동의 이득과 장점, 그리고 어려운 점 (예상되는 어려움)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개는 어떤 행동, 그리고 그 행동과는 다른 선택을 비교하게 됩니다. 영어로는 어떤 행동에 드는 비용(cost)과 그로 인한 이득(benefit)을 고려한다는 의미에서 '가성비 분석(cost-benefit analysis)'라고 합니다. 여기서 A 행동과 B 행동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은, 즉 A 행동의 대안으로써 B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표는 어떤 습관을 새롭게 만들거나 버리기로 할 때,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도움이 됩니다. 선택의 득과 실을 미리 파악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직관적' '본능적'으로 합니다. 직관적이거나 본능적인 선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선택의 결과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하는 판단인 만큼 나중에 예상치 못한 걸림돌을 만났을 때 당황하거나 후회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후회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릴 때도 있습니다.


  한 번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싶은 학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 부적응이 크거나 학폭에 노출된 적은 없었지만, 공립 고등학교의 틀이 자신에게는 버겁다고 느낀 학생이었습니다. 자퇴를 할 만한 이유가 뚜렷하지 않았기에 학교에서 숙고 기간을 가져보도록 권했고, 그때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부모님은 본인의 강력한 자퇴 욕구에 한풀 꺾여있었지만, 가능하면 자퇴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고 제게도 자퇴하지 못하게 상담해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상담을 하는 의사의 입장이 이미 한쪽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학생의 마음이 열리기 어렵기 때문에, 저는 학생이 자퇴를 했을 때의 이득과 어려운 점, 그리고 지금대로 학교를 다닐 때 이득과 어려운 점에 대해서 결정저울을 함께 그려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퇴에는 이점만 있다고 생각했던 학생이 자퇴했을 때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게 된다던지, 사회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앞으로 자신의 삶에 어떤 어려움을 미치게 될지도 고민해 보았습니다. 자퇴를 해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대안학교에 간다면 어떨지, 대안학교에서 어려움이 생긴다면 어떨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 옳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과거 비슷한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어떤 이득이 있었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안내하며 스스로의 미래를 상상해 보도록 도왔습니다.


    학생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결말은 알려드리지 않을게요. 중요한 것은 학생이 그러한 사고의 과정을 거치며 행동의 결과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기회를 처음 가져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각자가 믿는 대로 상황을 보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결심을 하게 되면 멈춰야 하는 징후가 보여도 브레이크를 걸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결정저울은 거기에 '잠시 멈춤' 표지판을 내걸고 '정말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 보자'라고 말을 건넵니다. 물론 자퇴를 해도 상황에 따라 학교에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결정일수록 '잠시 멈춤'을 길게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그동안 '그냥 멈춰'있지 말고, 결정저울을 그리고 시간을 두고 반추하고 숙고해 보세요. 충분히 숙고했다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표를 더 수정해 보세요. 점차 생각이 정돈되고 방향이 명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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