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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16.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6. 상쾌한 기분을 있는 그대로 누리기

  얼마 전 다녀가신 A 씨가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오랜만에 상쾌하다고 느꼈어요.'

  이 말이 얼마나 반갑던지요.


  상황은 이렇습니다. A 씨는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오랫동안 간병을 해야 했던 분이었어요. 오래 걸렸지만 가족의 병세가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는데, A 씨는 '가족이 다시 나빠질지 몰라'라는 불안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불안이 A 씨의 삶을 잠식하고 에너지를 점점 빼앗아가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안타까워서 치료도 권했지만 자신이 의지가 박약한 것이라며 치료를 오랫동안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에 용기 내어 병원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기 내서 약도 먹고 자신의 이야기도 하나씩 하기 시작하셨어요. 그간 약에 대한 불신이 많았지만 약의 도움을 받아 편안하게 자고 불안이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난 지 수개월 정도가 지난 어느 날, A 씨가 '상쾌하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상쾌하다'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 느낌인지 모르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개운하게 일어나고 햇살이 따뜻하며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 아침. 기온도 습도도 적절해서 땀을 살짝 흘려도 기분 좋게 마를 것 같은 점심. 배가 적당히 부르고 거북하지 않으며 발걸음이 가벼운 오후. 우리가 '상쾌함'을 느끼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쾌함'의 기억은 오래가면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그러니 그 상쾌함을 즐겨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마음에 오래오래 간직하시고 다시 어려움이 찾아오더라도 '상쾌한 순간이 다시 올 것이다'라고 믿을 수 있게 말입니다. 특히 A 씨는 상황이 좋아지면 좋아지는 대로 '다시 나빠질 것'이라는 불안으로 고통받았기 때문에 이 기억이 오래 간직되는 것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A 씨의 회복은 진행형입니다. 앞으로도 여러 일을 겪게 되시겠지요. 때로는 다시 아플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쾌함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다시 찾아왔을 때도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상쾌하다면, 상쾌함을 만끽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상쾌하지 않다면, 다시 상쾌해질 그날을 기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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