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Mar 21.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59. 스스로를 정말 믿을 수 있나요?

  여러분은 스스로를 믿으시나요? 내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들이 현실에 기반한 것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확신할 수 있으신가요? 여러 근거 가운데 가장 합리적인 것을 선택하고, 내가 틀렸다면 기꺼이 판단을 바꿀 수도 있을 정도로 믿으시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은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정신질환의 원인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현상은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불균형도 여전히 온전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뇌에 (일시적이던 영구적이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뇌라는 장기는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뇌의 변화가 생기면 우리의 행동이 변하게 됩니다.


  ‘지긋지긋한 호르몬’ ‘지긋지긋한 뇌’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사회에는 뇌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정말로 ‘뇌의 판단’을 믿을 수 없다면 여러분 마음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정신과 병동에 가장 많이 입원하는 질병은 조현병, 조울증, 중독입니다. 이 세 질환은 ‘뇌의 질병’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치료를 통해 신속히 개선되는 것도 많지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회복되는 영역도 있고 어떤 부분은 영영 회복되지 않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조현병은 감각이 예민해지는 병, 자극을 적절하게 거르지 못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감각 자극에 왜곡, 그리고 이를 인지하고 판단하는 데 왜곡이 발생합니다. 나는 분명히 ‘그 소리’를 들었는데,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분명히 '도청당하고 미행당하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나를 비웃습니다. 중독은 중독 대상에 대한 조절력을 상실하는 병, 중독 대상으로 인해 삶이 망가지는 것을 분명히 아는 데도 벗어나기 힘든 병입니다. 머리로는 '절대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아는데 '정신 차려보면' 이미 소주 두어 병을 비우고 잠들었다가 깨어납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밀려오는데 지금의 불쾌감을 가라앉히는 방법이 술 말고는 전혀 없습니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스스로의 판단을 점점 믿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절망적으로 느껴질까요? 실제로 정신질환은 ‘자살’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더 이상 살아가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차라리 스스로 삶을 끝내는 것을 선택하게 됩니다.


  조금 아는 사람이 가장 용기 있다고 말합니다. 많이 알면 알수록, 그야말로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모든 것에 더욱 조심스러워집니다. 말도, 행동도 삼가게 됩니다. 갓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보다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 저 역시 병에 대한 편견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이 모든 것이 병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그로 인해 제가 지치면 ‘아니 왜 못해?’ ‘치료진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잖아’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로 지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무언가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 무거워졌습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신과 의사의 삶이 누적된다면 이러한 마음을 이해하는 폭과 깊이를 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내가 정말 알고 하는 말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안다‘고 말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다고 '믿을' 뿐입니다. 가끔은 자신의 '믿음'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