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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22.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0.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정신과 진료실을 찾는 분들은 으레 약을 처방받을 것이라 생각하십니다. 실제로 약은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다양한 정신과 증상이 뇌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 의한 것임이 많은 연구 결과로 밝혀졌고, 꾸준한 약물 치료가 불균형을 해소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신경세포의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한다는 결과도 보고되었습니다. 정신분석의 시초인 프로이트의 시대만 해도 오랜 정신분석을 통해서만 개선되던 증상을 이제는 약으로 쉽고 빠르게 호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 전에 비하면 약물 부작용도 아주 많이 개선되어, 외관상 약을 먹는 사람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약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까요? 약이 없다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극심해져 스트레스에 압도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경우라면 약물 치료를 반드시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이 '약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약을 먹고 있으니 밤낮을 뒤바꿔 무질서하게 생활해도 될까요? 약을 먹고 있으니 운동을 하지 않고 식사를 게을리해도 괜찮을까요? 식사, 운동, 규칙적인 생활이 대체 치료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약을 먹는다고 다 좋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약을 먹어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발목을 다쳐서 통증이 심해졌다고 해볼게요.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에 방문했더니 다행히 수술할 수준은 아니지만 약을 먹고 염증을 가라앉혀야 하는 상황이라며 약을 처방해 주십니다. 약을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고 달리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더 나빠집니다. 운이 나쁘면 미세골절 부위가 어긋나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발목을 다치면 약을 먹는 것 외에도 얼음찜질을 하고 다친 다리에 부목을 대고 쉬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다리가 다치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 마음에 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아프면 약을 먹어서 급한 불을 끕니다. 영양이 고루 잡힌 식사를 하고 낮에는 해를 보고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잠을 잘 자야 합니다. 스트레스 상황에 일부러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쉴 수 있다면 며칠 휴가를 내도 좋습니다. 이와 같은 생활의 변화가 함께 있어야 약도 제 힘을 쓰게 됩니다. 


  현대의학이 발전해도, 여전히 우리가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습니다. 약에 기대어, 혹은 다른 것에 기대어 내가 할 일을 뒷전으로 두거나 눈감고 있지 않은지 한 번 점검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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