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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23.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1. 자존심에 스크래치 가는 이야기

  여러분 정말 속상한 일이 생기면 마음이 어떠신가요? 기대했던 일이 예상 밖의 상황으로 좌초되었을 때, 남들에게 벌어지지 않는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나에게 생겼을 때 말이에요. 예를 들면 당연히 승진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만 승진 인사에서 누락되었을 때, 절친이라고 생각한 무리에서 나만 소외된 단톡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평생 나만 바라볼 것 같던 배우자가 바람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나쁜 일에 연루되고 경찰서에 들락날락거릴 때, 그리고 그간 이뤄놓은 일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고 느낄 때.


  사람마다 겪는 사건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러한 일들의 공통점은 '자존심을 갉아먹는' 일입니다. 제게도 20대 후반 커뮤니티 글에서나 읽을 법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일은 제가 잘못해서 생긴 것은 아니었지만, 사건은 발생했고 수습을 해야만 했습니다.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사건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지만, (비속어라 죄송합니다) '아 x 팔려'라는 생각이 수년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 하필 내게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 수십, 수백 번을 머릿속을 되뇌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며 나를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보니, 저는 그 사건 자체가 나 자신이라고 헷갈렸던 모양이었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아주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내가 정말 못났고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괴롭혀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두에 나열한 속상한 사건들이 진짜 속상해지는 공통적인 이유는 '그 일에서 성공하지 못하면(또는 실패하면) 나는 쓸모없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진 인사에서 누락되는 일은 속상하고 어쩌면 창피하지만, 그렇다고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는 일로 인해 나라는 사람이 가치가 전멸하는 것은 아니지요. 내 자식이지만 '나'와는 다른 존재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 = 특정 성취' '나 = 자식' '나 = 배우자'라는 그릇된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 공식에 파열음이 생길 때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파열음은 우울감, 불면, 불안, 공포와 같은 정서적 고통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의 마음을 속상하게 하는 일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마저 무너뜨리지 않도록 나와 남, 나와 사건을 분리하는 연습을 평소에도 많이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자기 관찰'은 이런 연습을 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다양한 종류의 명상, 글쓰기, 일기 쓰기와 같은 자기 관찰을 통해 나의 소중함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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