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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2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2. 중독은 미래의 행복을 가불 해오는 일

  중독, 즉 특정 대상에 취하는 일은 왜 벌어질까요? 현실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직시하는 것이 어려울 때, 지금의 괴로움을 잠시라도 잊고 싶을 때 취하고 싶어 집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이별 통보, 직장에서의 괴로운 일, 가족 불화, 경제적 어려움, 불면, 우울감과 같은 고통 앞에서 마음이 평온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후배는 '음주는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어딘가 만족스럽지 않으니까' 마치 신용카드로 미래의 소득을 끌어다 쓰는 것처럼 미래의 내가 느끼리라 믿는 좋은 감정을 미리 끌어 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술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담배도, 마약도, 도박도, 스마트폰도, 지금의 내게 '잠깐만, 미래에서 당겨올 수 있어'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잠깐 쉬었다 가'라고 유혹하면서, '네가 힘든 것을 잊게 도와줄 거야'라고 말하면서요. 


  문제는 이렇게 가불 해서 가져온 좋은 감정은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주는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쓰는 것'이라 말했던 후배는, 실컷 술을 마신 다음 날 매우 우울해진다고 했습니다. 후배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많은 환자분들이 술을 실컷 마신 다음날 숙취와 불쾌한 감정에 시달리고, 공황이 재발합니다. 이런 일이 장기화되면 금단에 시달리고, 금단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술을 마시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가불은 가불일 뿐, 결국 갚아야 하는 빚인 것입니다. 취해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빚에 복리로 이자가 붙어서 나중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술도, 담배도, 스마트폰도 그 자체는 '중립적'인 행위, 즉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미래의 행복을 갚을 생각 없이 가불 하는' 목적으로 이용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당장은 마음이 편하고, 지금 당장은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일, 모레, 또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옵니다. 오늘의 음주가, 지금의 스마트폰 사용이 어떤 미래를 가불해오게 될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시면 좋겠습니다.


* 취한다는 것에 대해서: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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