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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26.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63.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우리도 상처받는 사람입니다

  가족분 중 가끔 '쟤가 환자니까 내가 참아야지'라고 생각하시거나, 무조건 받아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받아주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받아줄 것과 받아주지 않을 것이 있습니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에는 경험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예는 조현병입니다. 병의 증상으로 환청과 대화를 하거나 가끔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방을 치우면 죽는다는 망상이 생기기도 하고, 불안해서 창문과 암막커튼을 꼭꼭 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온 가족이 함께 쓰는 공용 공간인 거실이나 화장실, 주방과 같은 곳까지 마음대로 더럽히거나 쓰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예를 들어 볼게요. 자신의 정신병이 부모가 어려서 잘못 기른 탓, 또는 학대나 체벌을 한 탓이라 주장하며 그로 인해 불구가 되었으니 생활비를 대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부모가 잘못한 일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알고 잘못했던 모르고 잘못했던 잘못한 일은 사과를 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하지요. '적절한'이라는 단어가 너무 애매하고 판단하기가 어렵지요? 예를 들어 다 큰 성인이 '이래저래 내가 일을 못 하니 돈을 달라'라고 요구한다면 어떨까요? '생활비를 다 대 달라'라고 하거나 '집에서 같이 살게 해 달라'라고 한다면요? 만약 마음의 상처가 있다면 사과를 하고 치료를 받는 것까지는 가족이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몇 번의 도움은 필요할 수 있어요. 그마저도 해주지 않으면 가족에게 죄책감이 너무 무거울 것입니다. 하지만 죄책감을 자극하며 '그러니 이렇게 해 줘'라고 요구하거나 말을 함부로 하며 상처 주는 일이 반복된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이제는 '환자'라는 이유와 핑계로 '착취'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불합리적이라 느껴도 상대가 환자라고 무조건 받아준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될까요? 가족도 사람입니다. 아픈 말을 들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용당하고 있다고 느끼면 불쾌합니다. 가족이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을 환자도 알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서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문가와 상의하고 나도 보호하고 환자의 치료도 돕는 방법을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 가족이 도와줄 수 있는 '정서적 지지'에 대해서: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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