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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Mar 04.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47. 가족이 아픈 이들에게: 어떻게 해서든 해줘야 할 것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저희(가족)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입니다. 가족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서적 지지'입니다. 하지만 이 모호한 표현으로는 무엇을 도와줘야 할지 헷갈릴 때가 너무 많습니다.


  환자를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두 가지 축은 환경 조성과 공감입니다. 여기서의 환경 조성은 '치료적 환경 조성'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부탁드리는 것은 '병원에 오는 것을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의외로 혼자서 병원에 오기가 어려운 환자들이 많습니다. 교통이 불편해서, 마음이 불편해서, 시간을 지키지 못해서, 병원비가 없어서 등등 이유는 다양합니다. 이러한 이유 중 가족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꼭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생활비를 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그 돈으로 제대로 진료를 볼 수 있어야 병세에 변화가 생기고 가족의 삶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두 번째는 공감입니다. 사실 환자의 감정이나 상황에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환청에 반응해서 허공에 삿대질하거나 피해망상 때문에 가족을 미워하며 같이 식사하는 것조차 꺼릴 때, 가족은 당황스럽고 화가 납니다. 우울증 때문에 심하게 자책하거나 불안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려고 하지 않으면 가족은 '뭐가 그렇게 우울하고 불안한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토록 많은 지원을 해주는데도 중독 증상이 재발하면 가족들은 심한 배신감에 사로잡힙니다. 가족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환자의 감각 경험 (환청, 망상, 우울, 불안 등)과 환자의 감정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환자 고유의 감각 경험을 인정하고, 그러한 경험에 근거한 감정에 공감하는 것은 연습이 많이 필요합니다.


'네가 듣는 그 소리를 나는 들을 수가 없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무섭고 불안할 것 같다'

'너 자신을 그토록 미워할 정도로 우울하고 자책을 하고 있다니 네가 참 괴로울 것 같아 안타깝다'

'평소 타던 지하철을 탈 수 없을 정도로 불안하다니 답답하고 괴로웠겠구나'

'갑자기 심장이 조여 오고 숨을 쉴 수 없었다니 정말 무서웠겠다'

'스스로 멈출 수 없다고 느꼈다니 좌절스러웠겠구나'


  공감한다고 상대방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감은 자신의 상황을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감각 경험을 재평가할 기회를 줍니다. 특히 가족의 공감은 강력한 치료제입니다. 병이 생긴 것은 가족 탓이 아니지만, 가족의 태도는 병을 다스리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가족은 회복의 강력한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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