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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Feb 23. 2023

정신과 진료실에서 전하는 이야기

39. 취하지 말아야 할 이유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왜요?

  벌써부터 한숨과 뒤로 가기 버튼 누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다들 좋아하진 않으시지만, 진료실에서만큼은 안 할 수가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취한다'는 단어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1) 어떤 기운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다, 2) 무엇에 마음이 쏠리어 넋을 빼앗기다, 3) 사람이나 물건에 시달려 얼이 빠지다시피 되다, 입니다. 취하는 대상은 술도 있겠지만, 마약, 도박, 게임, 쇼핑, 폭식, 혹은 관계(애인이나 특정 친구), 업무, 스마트폰, 유튜브, 커피 등 어떤 것에라도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거나 넋을 빼앗기거나 얼이 빠지다시피 한다면' 취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체 왜 취하지 말라는 걸까요? 취하다(醉-하다)의 '취(醉)'는 酉(술병을 그린 것) + 卒(군사 졸)이 결합한 모양입니다. 여기서 졸은 졸병, 즉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죽는 병사입니다. 그래서 졸(卒)에는 '마치다' '끝내다' '죽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취한다는 말은 '술'과 '죽는다'는 말의 결합이므로 끝장 볼 때까지 마신다, 죽을 때까지 마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취한다는 말에 '죽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상당히 오싹합니다. 무엇이든 취하면, 즉 과도하게 몰두하거나 정신을 빼앗기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선조의 경고가 아닐까요? 취하는 모든 사람을 '중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취하는 일이 잦아질수록 중독에 빠질 확률이 높아집니다. 알코올 중독의 경우, 중독이 간접 사인이 되어 돌아가시는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중독자가 아니어도 정말 많은 죽음이 만취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나는 그 정도로 마시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도'는 매우 주관적입니다.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셨지만, 나중에는 술이 나를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십니다. 술이 세니까 괜찮다고요? 술이 세기 때문에 한순간에 가버립니다. 새 학기가 되면 '새내기 OT에서 술 마시다가 사망' 뉴스가 단골처럼 찾아오는 이유는 정말 죽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장에서 그런 일을 많이 봐서 그런지 너무 무섭습니다. 

  술이 아니니까 괜찮다고요? 정신이 흐려지고, 몸도 제대로 못 가누며, 넋을 빼앗기고, 얼이 빠지면서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나갈 수 있을까요? 무언가에 취한다는 것은 내 삶의 운전석을 취한 대상에게 내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에게 삶의 운전대를 내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시적이라고 하더라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삶의 주권을 완전히 빼앗겨, 말도 안 되는 유턴이나 중앙선 침범으로 나의 삶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습니다.


  취한 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라시나요,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길 바라시나요?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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