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엄마
첫째는 6개월이 되면서 이유식을 시작했다. 둘째는 조금 일찍, 5개월이 되면서 이유식을 시작했다. 한 번 해 본 일이라 여유롭고 편안하게 잘 해낼 줄 알았다. 첫째는 처음 준 쌀미음을 꿀떡꿀떡 잘 받아먹었다. 첫 숟가락 입에 넣고 '이건 뭐지' 하고 눈이 똥그래진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반면 둘째는 첫 술부터 영 불쾌한 표정이다. 몇 숟가락 먹더니 기어이 엉엉 운다.
'내가 뭘 잘못했지?'
'아이의 무슨 신호를 놓쳤지?'
'왜 첫째처럼 안 되지?'
'조금 안다고 이유식 책도 안 읽고 막 했다가 애한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거 아닌가? 책부터 읽어야겠다.'
이게 무슨 완벽주의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나 역시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내 생각에 의문을 품지 않고 괴로워하기만 했다. ⎡마음 지구력 (윤홍균 저)⎦을 읽고 나서 나의 완벽주의가 육아를 비롯한 삶 전반을 얼마나 괴롭히고 있었는지 무릎을 탁 쳤다.
이 책에 따르면 ⟪숨어 있는 완벽주의⟫는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남들처럼' '평범하게'라는 비교 언어
둘째, 잘, 제대로, 온전하게, 근본적으로 라는 부사
셋째,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쉽게 하기를 원함.
넷째, 자신에게 의무와 금기를 강요함.
'왜 우리 아이는 남들처럼 편하게 할 수 없지?'
'다른 엄마들은 쉽게, 빠르게, 제대로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왜 이럴까?'
'애들이 다 다르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러면 안 돼. 우리 애는 그러면 안 돼.'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많은 엄마가 ⟪숨어 있는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이고, 그 결과 육아 우울증에 빠지거나 아이에게 더욱 집착하는 것 같다. 엄마들이 완벽주의의 수렁에 빠져버리는 이유 중에는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플랫폼'이 있다. 첫째가 갓난아기였을 때 아이의 수유와 수면 텀을 기록하기 위해 모 어플을 썼다. 그 어플에는 '공개일기'라는 것이 있는데, '공개일기'에는 우리 아이와 비슷한 일수, 주수인 아이들의 부모가 올린 사진과 글이 올라온다. 그걸 보면 나도 모르게 '어, 우리 애는 아직 이거 못 하는데' '옷을 예쁘게 입혔네. 왜 나는 이런 센스가 없지?'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마지막에는 '난 참 못난 엄마'로 귀결했다. 내가 이런 생각 고리에 취약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육아와 관련된 어떤 SNS도 하지 않았고 공개일기도 보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SNS로 소통하며 육아 동지를 돈독히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나라면 그 안에서 육아 동지를 만들기는커녕 남과 나를 비교하고 닦달할 것이 눈에 선하다.
한편 SNS만의 잘못은 아니다. 1등부터 줄 세우는 학창 시절 성적표, 아니 그보다 더 어릴 때 시작한 '00 이는 누나보다 잘하는구나' '00 이가 동생보다 낫다'라는, 칭찬인 줄 알았던 비교의 밭이 있었기에 완벽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온갖 육아서에는 '너무나 완벽한 엄마'가 등장한다. 아이에게 절대 화내지 않는 엄마, 아이 말에 언제나 귀 기울이고 공감하며, 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에게 잘 조율된 엄마. 주변을 돌아보면 어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직장과 커리어를 희생하는데, 나는 이기적인 엄마인 것 같다. 또 어떤 엄마는 아이가 둘, 셋 있어도 커리어를 유지하는데, 나는 사회적으로 낙오된 것 같다. 어떤 엄마는 아들 딸 하나씩 낳아 완벽한 엄마 같고, 누구는 딸 자매 또는 아들 형제를 낳아 아이들에게 평생 친구를 만들어준 완벽한 엄마 같다. 완벽한 엄마의 목록은 써도 써도 끝나지 않는다. 나에게 ⟪완벽한 엄마⟫는 첫째를 낳고 복직한 이후 줄곧 사표를 가슴에 품고 다녔던 이유였다. 완벽주의 덕분에 나는 많은 것을 성취해 냈지만,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고 그 성취를 남편과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강요해 왔다. 완벽주의의 실체를 알게 된 지금도 완벽주의는 가끔 나를 괴롭히는 오래되고 헤어지고 싶은 못된 연인이다.
정신분석적으로는 충분히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는 있어도 완벽한 엄마 (perfect mother)는 없다. 좋은 엄마 (good mother)가 아니라 우리 엄마 (my mother)만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 '너는 엄마의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야, 아들이야'라고 매일 말해주는 것처럼, 나는 아이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엄마이며,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임을 스스로 매일 말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