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소중한 시간을 사수할 것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나 역시 항상 시간이 부족하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은 그 보다 많으며 시간은 해야 할 일을 겨우 소화해 낼 만큼만 있다. 돈을 주고 시간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첫째를 낳고 복직한 후 둘째를 위한 출산휴가를 나오기까지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새벽 5시 기상이었다. 7시에 출근을 위해 준비하고 아이를 깨울 때까지의 2시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요가를 하고, 책을 읽고, 맑은 정신으로 써야 할 글을 쓰고, 때로는 요가매트 위에 그냥 누워있기도 했다. 물론 일주일의 반은 침실에서 사라진 엄마를 찾느라 엉엉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5시에 기상할 때는 언제나 설렜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시간 부족은 더욱 심해졌다. 둘째가 밤중수유를 두 번 이상 하는 100일까지 새벽 기상은 꿈도 못 꿨다. 낮에는 첫째 케어, 밤에는 둘째 케어로 엄마 공장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러나 시간은 반드시 흐른다. 둘째가 100일이 지나며 한 번에 분유를 240ml를 꿀떡꿀떡 마시는 시기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효자다.) 첫째의 수면 패턴도 점차 안정되어 동생이 새벽에 응애응애 울어도 웬만해서는 깨지 않으며, 옆에 아무도 없어도 쿨쿨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잠에 들 때는 무조건 엄마가 있어야 한다.) 새벽 5시를 꿈꿔볼 수 있는 시기가 다시 왔다.
두 아이 엄마는 새벽 5시에 기상하면 뭘 할까? 우선 둘째의 새벽 수유를 한다. (둘째는 시계처럼 새벽 4시 또는 5시에 배가 고프다고 한다.) 수유하고 나면 그날의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3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이유식 데이 (조금 더 크면 시판으로 할 생각이지만, 아직 뭘 먹을 수 있는지 구분할 수 없어서 알레르기 테스트 중이다), 아침식사 준비, 첫째의 어린이집 등원 준비 (별 거 없지만 시간에 쫓기면 꼭 놓치는 게 생긴다), 밤새 남편이 주전부리한 간식의 흔적 치우기 (아이들이 집어먹는다), 자질구레한 집안 정리 (내가 밟아서 발이 아프다). 그러다 보면 남편이 일어나고 곧이어 첫째가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둘째도 운다.
잠깐. 내가 이러려고 새벽 5시에 일어난 건 아닌데. 어차피 이유식은 아이가 낮잠 잘 때도 만들 수 있고, 여차하면 냉동실에도 항상 비상식량이 있다. 청소는 둘째가 놀 때 하면 되고, 집안 정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새벽은 나를 위해 쓰자.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하자. 해야 할 일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정돈되지 않은 거실의 불쾌감은 잠시 잊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하고 책을 읽자. 따뜻한 차나 커피 한 잔을 쥐고 소파에 기대 누워 빈둥대자. 해 뜨지 않은 새벽 시간의 적막고요함은 나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주고, 삶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낮에도 혼자 시간을 쓸 수 있는 날이 있지만, 새벽이 주는 상쾌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주말에는 종일 첫째와 놀아주느라 새벽에 일어나기가 정말 괴롭다. 둘째를 다시 침대에 넣어주면서 나도 그냥 잘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그렇게 잠들고 나면 하루종일 어딘지 답답하다. 괜히 아이들과 남편에게 짜증도 더 많이 낸다. 그런 날들을 겪으면서 '아, 나는 나를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일수록 반드시 새벽에 일어난다. 그건 나를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고 우리가 함께 이뤄내는 일이다.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기 위해 밤 9시 반에 무조건 잔다. 나는 첫째와 침대에 들어가 책 두어 권을 읽다 보면 먼저 잠들고, 남편이 둘째의 마지막 수유와 잠 못 이루는 첫째를 가끔 달래준다. 나의 새벽 5시는 남편 없이 이뤄질 수 없다. 그리고 아침에 깨지 않고 늦게까지 자 주는 첫째 없이도 이뤄질 수 없다. 조금 지나면 통잠자는 둘째도 도와줄 것이다.
모든 엄마들이 나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의 일주기성(chronotype; 보통 아침형, 저녁형, 중간형으로 나뉜다)도 모두 다르고, 각자가 가장 편안한 시간은 다를 테니 말이다. 다만 하루에 1시간, 안되면 30분이라도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모든 엄마가 갖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라에서는 저출생 대책으로 이런 것을 고민해 보면 좋겠다. 왜 0세 반 어린이집은 이토록 가기가 어려우며, 좋은 이모님은 만나기가 어려워서 양가 부모님께 미안해하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엄마들은 항상 해야 할 일이 많다. 엄마들의 뇌는 상시 풀가동 중이며, 잠자는 시간 말고는 퇴근할 일이 없다. 아이가 둘 이상이면 더하다. 그러니 부디, 어떤 도움을 받아서라도 엄마 자신만의 시간, 스스로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을 꼭 확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시간에 엄마들이 마음 편히 미용실도 가고, 아픈 곳이 있다면 진료도 받고, 카페에 가서 멍하게 앉아도 있고, 쇼핑도 가고, 낮잠도 잤으면 좋겠다. 엄마의 정신건강은 가족의 정신건강에 직결된다. 육아에 동참하는 가족도 적극적으로 엄마의 시간 사수에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