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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이 빌어먹을 공감능력

by 마루마루

하루종일 유치원에 다녀오고, 종일 엄마랑 붙어있는 둘째를 보며 얼마나 엄마랑 놀고 싶었을까. 빨리 둘째 재우고 더 놀아줘야지. 유치원 갈 준비가 바쁜데, 책장 앞에서 책을 고르고 있네. 엄마랑 시간을 더 보내고 싶은가 보다. 짜증 내지 말고 웃으며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줘야지. 식탁에 앉아 딴짓을 하고 밥을 본체만체하고 있구나. 얼마나 지루하면 그랬을까. 아니면 밥이 맛이 없어서 그랬을까. 화내지 말고 기다려줘야지.




누나에게 치여 엄마가 얼마나 고팠을까. 낮에 더 많이 놀아줘야겠다. 아빠와 함께 있지만 엉엉 울고 있네. 이가 나려고 해서 얼마나 힘들까. 내가 안아줘야지. 이유식 숟가락을 막 던지네. 힘 조절이 안 돼서 그렇겠지. 엄마 머리카락을 막 잡아당기네. 힘 조절이 안 돼서 그렇겠지. 아이고 내 볼을 할퀴었네. 어제 막 손톱을 잘라서 아직 날카로운가 보다. 둘째라 누나에게 치여서 내가 휴직을 해도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아 항상 미안해.




하루종일 밖에서 일해서 얼마나 힘들까. 빨리 설거지하고 첫째 목욕도 내가 시켜야지. 얼마나 피곤할까. 잠깐 자겠다며 깨워달라고 한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그냥 내가 아이들 보지 뭐. 하루종일 일하느라 밤에 많이 피곤했는지 간밤에 마신 콜라 캔을 소파 밑에 그대로 두고 잤네. 그냥 내가 치우지 뭐. 옷을 거꾸로 벗어서 세탁물통에 넣어놨네. 바빴나 보지 뭐, 내가 다시 뒤집어놔야겠다.




이 빌어먹을 공감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이해하느라, 그러는 사이에 이해받지 못한 내 마음과 몸이 점점 지쳐간다. 머릿속의 버럭이(Anger)가 이때다 싶어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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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먹고 유치원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나가야 되는데 세월아 네월아 언제까지 저럴 거야. 이 정도면 잘 차려준 것 같은데 알아서 먹어라. 숟가락 좀 던지지 말아라. 하루에 세 번이나 바닥을 닦아야 되잖아. 밤에는 좀 자라. 잘 자다가 갑자기 요즘 왜 그래. 하루종일 밖에서 일해서 힘든 건 알겠는데, 나도 하루종일 집에서 논 거 아니거든? 집안을 이 정도로 유지하고 아이들을 케어하고 밥하고 사소한 집안일들을 처리하는 거, 지금 이렇게 앉아있는 것처럼 보여도 동시에 다섯 가지 일을 머릿속에서 하고 있다고.


이제 버럭이는 입과 머리에서 불을 뿜으며 마구 화를 내고 있다.


나도 힘들다고. 왜 내가 너네 비위만 맞춰줘야 하냐고. 한 번 말한 건 좀 들어라. 밥도 제때 먹고, 제발 자기가 먹은 건 좀 치우고. 왜 물건을 쓰고 제 자리에 둘 줄 모르냐고. 제대로 안 배웠냐!!!!!!!!


하지만 나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을 뿐이다. 마음속에서 나는 버럭이를 달랜다.


야, 항상 그런 건 아니잖아. 네가 좀 힘들어서 그래. 좀 쉬고 다시 생각하자.




엄마들의 몸과 마음이 쉬는 시간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엄마가 한 번에 대여섯 가지 일을 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첫째 유치원 준비물 지금 사야겠다. 둘째 이유식도 챙겨놔야지. 저녁밥은 뭐 하지. 냉장고에 뭐가 있더라. 아, 양파가 똑 떨어졌던데 얼른 사 와야겠다. 곧 조카 생일인데 선물은 뭐 하지. 얼른 찾아봐야겠다. 가족 모임은 어디서 해야 될까. 자리가 있는지 예약부터 해야겠다.' 두 번째 육아휴직이라 첫째만 기를 때보다 요령은 훨씬 좋아졌지만, 그만큼 챙겨야 할 일이 늘어났다. 이건 마치 전공의 연차가 올라가면서 일에 요령이 생겨 효율성이 좋아졌지만 동시에 그만큼 일이 늘어서 더 바빠진 것과 동일하다. 높은 효율성, 높은 난이도의 함정에서 이 빌어먹을 공감능력이 나를 점점 갉아먹는 것이다.


물론 항상 화가 나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이 힘들거나, 체력이 방전됐거나, 특히 밤잠을 많이 방해받으면 확실히 예민해진다. 요 며칠 둘째는 이앓이를 하는지 어디가 불편한지 밤 12시부터 일어나서 엉엉 울기도 하고 눕혀놓으면 보채느라 안고 달래며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은 어딘지 한숨이 늘고 미간에 주름이 팍팍 생긴다. 눈치 빠른 첫째가 '엄마 기분 좋아요?'라고 물어보는 횟수도 늘어난다. 그제야 내가 요 며칠 힘들었다는 것을 안다. <엄마들만 아는 세계 (정우열 저)>에서는 일을 하건 일을 하지 않건 엄마들이 최소 주 2회는 독립된 수면 공간과 환경을 확보하도록 가족이 도와야 한다고 되어 있지만, 적어도 나의 현실은 그렇게 할 여건이 못 된다. 어렵게 만든 건 내 탓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맞다. '내 짐을 내가 더 지겠다'라고 기꺼이 나선 건 나였으니까. 결국 '내 탓이오'로, 나를 실컷 공격하고 만다.


엄마가 되면 감정의 폭이 늘어난다. 이는 단순히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혼자 살 때와 비교해서 훨씬 많은 사건과 사람과 감정에 노출되고, 자극 요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겪어낼 일이 많다는 의미가 된다.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감정의 소용돌이 안을 살아남는다는 것(surviving)이다. 평소의 나는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내가 (이해/배려/일)하고 넘어가지 뭐'라고 생각하는 편이어서 웬만한 일은 웃으며 유연하게 넘어가는 편이지만, 이 '좋은 게 좋은 거'는 때로는 이렇게 날카로운 독이 된다.


요즘 아이들 병원에 진료를 가 보면 아빠가 아이만 데리고 오는 경우가 정말 많다. 부럽기도 하고, 왜 나는 남편에게 아이 병원 좀 다녀와 달라고 말을 못 할까 답답하기도 하다. 물론 지금은 휴직 중이라 내가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감당 가능하지만 나중에 일터로 돌아간 후에도 지금처럼 하고 있을 것 같아 미래의 내가 벌써부터 불쌍하고 걱정이다. 내게는 더 많이 도와달라고 요구하고, 의도적으로 나의 감정과 요구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여전히 참 못하는 일이고, 연습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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