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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둘째가 첫째를 살리다

by 마루마루

일하는 엄마마다 마음은 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일하는 엄마일수록 아이에게 매달린다. 일을 해서 함께 해주지 못하는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주말에는 1분 1초가 아깝다고 빡빡하게 함께 놀아주고, 퇴근하면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집중한다. 아이가 아프거나 문제가 생기면 ‘내가 일을 해서 그런가’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사표를 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나는 그런 엄마였다. 나의 유일한 퇴근시간은 출퇴근하는 차 안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정도로 첫째를 낳고 복직한 이후 나는 제대로 쉬어 본 기억이 없다. 일터에서는 일하느라 쉬지 못하고, 퇴근하면 종일 나를 기다렸을 첫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라 쉬지 못한다. 그 결과 나는 9시면 거의 녹초가 되어 아이와 침대에 들어가 아이보다 먼저 잠에 드는 엄마였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해주지 못한 일들만 생각하느라 항상 아이를 향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 시점에 사직서를 내야 할까 고민하고, 일을 그만두고 전업 엄마로 전향하는 게 나을지를 저울질하던 정말 괴로운 날들이었다.


둘째를 갖기로 한 결심은 그런 내적 갈등과도 일부 맞닿아 있다. 솔직하게 고백해 보자면, 둘째가 있다면 어쩌면 내가 채우지 못하는 자리를 서로 채우며 커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둘째를 낳고 다시 휴직을 할 수 있다면 (만약 휴직하지 못해 퇴직을 하더라도) 첫째 아이와의 관계를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나는 임신 합병증 등으로 인해 한 달 일찍 산전육아휴직에 들어갔다. 그 시간 동안 첫째와 오롯이 지냈는데, 그간 함께 해주지 못한 것을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해소되기도 전에 출산과 조리원 입소로 2주 이상 집을 비우면서 첫째에 대한 죄책감이 오히려 배가되었다. 내가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난 것은 둘째를 출산하고도 세 달이 넘어서였다. 이번 휴직은 1년 3개월을 통째로 쓰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직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첫째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집에는 손이 많이 가는 남동생도 있고, 퇴근하면 밥을 차려줘야 하는 아빠도 있으며, 간간히 엄마가 해내야 할 프로젝트도 있다. 즉, 첫째는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랜 시간 동안 엄마를 독차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건 원래 그렇다. 아이가 외동이어도, 엄마가 일을 하지 않더라도 아이는 부모를 독차지할 수 없다. 부모에게는 아이와는 별개의 부모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연한 진리인데, 그간 나는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아이가 나를 독차지할 수 없는 이유가 내가 ‘어린아이를 두고 이기적으로’ 일을 하기로 선택했기에, 아이가 피해를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사라질 수 없었다.


그런데 둘째를 낳고 나서 나의 삶, 우리 가족의 삶, 아이의 성장을 찬찬히 살펴보니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론은 많이 알고 진료실에서는 가장 어려운 상황만 계속 봐 와서인지, 나의 성격 특성인지, 나는 여전히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아이의 요구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공감과 칭찬을 아끼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얼마나 좋은 말들인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을 100%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남에게는 그러지 않으면서 나 자신에게 그 단 한 사람이 되라고 압박하고 끊임없이 재촉해 왔다.


아이는 무엇을 보고 배울까? 물론 공감과 칭찬은 성장의 밑거름이다. 하지만 공감받지 못하는 상황, 칭찬을 놓쳐버린 상황, 억울하게 혼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실제 삶이다. 그 실제 삶에서 적응할 수 있게 도우려면, 좌절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에서 배워야 한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모르는 것도 있고, 가끔은 감정대로 행동해 버릴 때도 있으며, 아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뭔지 못 알아들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아이가 엄마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주고, 때로는 기다려 줄 수도 있어야 한다. '잠깐만' '기다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뤄질 수는 없으며, 갖고 싶은 것을 항상 가질 수도 없다. 그럴 때 스스로를 다독이고 혼자 기다릴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엄마와 아이 관계는 깨져도 복구하고, 복구했다가 또 깨지면 더 단단히 복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험 장소다. 또한 아이는 엄마가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위로를 받는 방법을 배우고, 도움을 청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때로는 인형에 기대어 자기도 하고, 동생과 투닥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며, 재미없는 곳에서 재미를 발견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까지나 엄마라는 온실 속에 아이를 가둘 수 없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은 엄마가 회복력 있는 아이를 길러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둘째를 낳고 나니 비로소 완벽함에 대한 강박을 조금은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침 시간은 바쁘다. 앉아서 놀아줄 시간은 없다. 출근 전에 침실과 주방을 대충이라도 정리해두지 않으면 안 되고, 아이들의 등원 준비가 끝나면 나도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동생을 챙기면서 첫째의 요구를 완벽하게 맞춰줄 수는 없다. 동생에게도 엄마를 향한 갈망이 있을 터인데, 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나의 목표지 한 아이를 완벽하게 케어해 내는 것이 목표는 아니다.




아이들아.

엄마는 다시 일을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항상 마음 졸이고 미안해하고 괴로워하지 않을 거야. 엄마를 위한 운동 시간도 가질 거고, 가끔은 친구도 만나러 갈 거야. 그렇다고 너희를 소홀히 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해왔고, 앞으로도 다할 거야. 그게 네 방식에 맞지 않는다면, 서로 조율하는 법을 배워보자.


복직을 하면 이렇게 마음먹었던 것을 까먹고 또다시 노심초사하고 사표를 썼다 찢었다 하는 날들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렇게 생각한 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동생 덕분이다. 동생 덕분에 엄마는 엄마와 아빠, 누나와 동생과 함께 살아낼 마음이 좀 더 단단해졌다고 믿는다. 그러니 동생이 누나를 살린 것,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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