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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엄마,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짜 사랑해요.

by 마루마루

첫째 딸은 말이 빨랐지만 감정 표현은 적은 편이었다. 좋아해, 사랑하는 물론, 싫어해, 미워해도 거의 없었다. 표현이 없을 뿐 전반적인 애착과 정서가 안정적이었기에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벌써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둘째와 함께 조리원에 있을 때, 첫째는 너무나도 이상했다. 출산하고 첫 3일은 평소와 비슷한 표정으로 동생을 궁금해하고 보고 싶다고 하면 보고 싶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리원에 들어가고 만날 수 없는 날이 늘어나자 아이 표정이 점점 이상해졌다. 어딘지 뚱하고 눈 맞춤도 하지 않으려 하며 전화를 걸어준 어른에게 ‘티비 볼래요' 라며 나와의 통화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사랑한다고, 보고 싶다고 말해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나를 쳐다보았다. 걱정되어 뭘 하고 지냈는지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아도 ‘모르겠어요’만 반복할 뿐이었다.


‘여보, 첫째가 좀 이상해. 감정 표현이 전혀 없어.'

'아파서 힘든가 보지. 당신 오면 괜찮아질 거야.'

'아니야 여보. 밖에서 아이 돌보는 어른들이 힘드셔서 티비를 많이 틀어주는 건 이해하지만 아이가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니까. 좋은지, 싫은지를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하고, 감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애 같아.’

‘(한숨) 알았어.. 안 보여주면 되잖아.’


첫째는 나의 출산 이후로 감기에 걸렸는데 통 낫지를 않고 계속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잠을 못 자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휴가를 갑자기 낼 수 없어서 양가 어른이 총동원되어 아이를 최선을 다해 봐 주셨으나 평소 소통이 많지 않았기에 아이와 교감이 잘 안 되었을 것이다. 일하는 엄마였음에도 애착인형 하나 없이 생짜로 엄마만 찾던 첫째에게 엄마가 없는 시간은 감기 이상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갑자기 사라졌고, 티비는 신경 말단을 자극하며 고통을 잊게 도와주니 아이에게는 티비가 모르핀이나 다름없는 마약이었을 것이다. 중독으로 삶에서 영혼이 빠져나간, 병원에서 자주 보던 그 공허한 눈빛이 이제 겨우 세 돌이 지난 딸의 눈에서 보였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것이 조리원에서 무리를 무릅쓰고 외출을 하고 퇴소를 앞당긴 이유였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후 나는 첫째 딸의 정서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원 후 어린이집 앞에서 실컷 놀아주고, 첫째의 간식을 먼저 챙겨주고 둘째를 먹였다. 주말에는 남편에게 둘째를 맡기고 둘만의 데이트를 즐겼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을 골백 번도 넘게 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는 첫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 당연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시간은 많이 보냈지만 사랑한다는 말에는 참 인색한 엄마였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반성하며 나의 말을 살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시간이 쌓여갔다. 어느 날 딸아이의 입에서 갑자기 흘러나온 말.

‘엄마 사랑해요’

마음이 울컥했다.

‘엄마도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해.’

딸아이의 대답.

'엄마,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짜 많이 사랑해요.‘

‘엄마, 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인짜 많이 사랑해요.’

그러고 키득키득 웃는다. 웃음 속에 만족감이 비어져 나온다. 숨이 꽉 차게 이——를 기일게 늘여 사랑을 표현할 때 가슴이 얼마나 벅찰까. 그렇게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 나는 그렇게 벅차게, 마음 놓고 사랑하고 있나. 아이에게 사랑을 다시 배웠다. 이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이 사랑한다고 한다. 이 사랑은 우리 둘을 넘어, 둘째에게, 아빠에게도 흐른다. 첫째는 동생을 꼭 껴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변화가 있었다. 싫다, 밉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동생 미워.’

‘우리 딸이 동생 때문에 엄마랑 많이 못 놀아서 서운하구나.’

그러면 끝이다. 말이 구구절절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 마디 내뱉고 그걸 엄마가 듣고 이해해 주는 것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요즘은 ‘엄마 싫어’ ‘아빠 미워’도 종종 나온다. 부정적인 감정은 긍정적인 감정보다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특히 아직 상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4~7세 아이들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느끼는 것만으로 관계가 완전히 깨지거나 영영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극도의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 첫째가 밉다, 싫다고 말할 때는 그 감정을 표현해도 안전하다고 느끼고, 이해받고 싶은 마음을 용기 내어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워낙 감정 표현 자체가 제한적이던 첫째에게 나타난 이 변화에 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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