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둘째는 왜 예쁠까?

by 마루마루

낳기 전,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둘째 너무 예쁘지?” 다. 물론 첫째 때도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만 둘째 때는 마치 첫째와는 다른 예쁨이 있기라도 한 듯한 뉘앙스가 항상 섞여 있었다. 뼛속까지 맏딸, K-장녀인 나는 내심 그런 말들이 서운했다. '첫째는 뭐 안 이쁜가? 흥.' 그런데 둘째를 낳고 한 달이 지나 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첫째 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다. '부모와 ‘육아’라는 세계가 낯설어서 적응하는 데 에너지가 소모된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모르니 불안하고, 스스로와 주변으로부터의 기대와 ‘잘 해내야 된다’는 압박을 느끼며 이게 맞는지 모르니까 끝없이 나와 남을 비교하게 된다.


'나는 남들만큼 잘하고 있을까?'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들만큼 잘 크고 있을까?'

'혹시 내가 놓친 건 없을까?'


아이의 성장이 ‘부모로서의 나’를 평가받는 잣대처럼 느껴졌다. 첫째의 신생아기, 그리고 육아휴직동안 매우 행복했지만 걱정도 불안도 참 많았다.


둘째는 그런 감정 소모가 훨씬 덜하다. 대부분의 일을 이미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발달이 좀 느린 것 같아도 ‘때가 되면 할 수 있게 돼’라고 생각하게 되고, 어디가 좀 아픈 것 같아도 ‘이러저러하게 대처하면 되지’라고 마음먹게 되며,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고 불안하지 않고 ‘사람은 다 리듬이 있지’라고 생각하고 조급해지지 않으니, 아이의 <예쁨>이 불필요하게 소진되지 않는다.




첫째가 어릴 때,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수면교육>이었다. 아이를 스스로 잘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압박으로 수면교육에 관한 책들을 여럿 읽었고, 눕혀서 다독이며 재우기, 울어도 반응하지 않기 등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번번이 혼자 재우기에 실패했다. 돌이 지날 무렵 나는 수면교육을 포기하고 옆에서 같이 자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는 혼자 잘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생각하면서.


이제와 돌이켜보면 첫째는 수면에서 예민한 아이였다. 오래 안고 업어줘야 잤고 반드시 옆에 사람을 두고 잤으며 조금만 일어나는 기색이 보여도 금방 깼다. (한편 둘째는 자다가 일어나도 혼자서 침대에서 놀고 한참 놀아도 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제야 옹알이로 부른다. 그래서 아이가 깬 지 모를 때도 가끔 있다.) 그런 첫째가 두 돌, 세 돌이 지나면서 7시 반까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자고 가끔은 졸리다고 혼자 침대에서 뒹굴다가 잠들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그때 그 수면교육,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곰곰 생각하게 된다. 스스로 잘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는 건 내 욕심이었을 뿐, 아이의 기질이나 나의 성격과도 맞지 않았다.


수면 때문에 얼마나 속앓이를 했던가. 누구네 아이는 혼자 잔대, 누구네 아이는 눕혀만 놔도 잔대와 같은 말이 나를 아이 수면 하나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못난 엄마로 만들었다. 수면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저귀를 떼는 것, 수저와 포크의 사용, 걷기와 킥보드 타기까지 아이의 크고 작은 습관과 행동마다 나는 평가받는 기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워킹맘이라 아이를 잘 못 기르고 있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했고,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으면서도 사직서를 품고 회사에 다니는 나를 만들어냈다.




둘째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손가락과 온 얼굴에 밥을 짓이겨가며 먹어도 언젠가는 스스로 수저와 포크로 점잖게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며, 지금은 아기띠에 안겨서 잠에 들어도 언젠가는 혼자 뒹굴다가 잘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인지 둘째의 저지레는 귀엽고, '한때다'라는 생각에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마음은 첫째를 보는 마음에도 너그러움을 준다. 첫째는 아직도 내 품에서 자지만 이것도 길어야 10년일 것이며,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것도 이내 끝날 것임을 안다. 지금 한글을 못 읽고 숫자와 순서를 헷갈려도, 때가 되면 어떻게든 해낼 것이며 안 되면 가르치면 된다는 것도 안다. (얼마나 좋은 학습 도구가 많은 세상인가!) 지금 뭔가가 좀 부족해 보여도 아이는 자신의 속도로 해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도,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둘째의 예쁨은 첫째에게 전염된다. 그래서 둘째만 예쁜 게 아니다. 첫째도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