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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정신과 의사 엄마라고 다 잘하는 건 아니에요.

by 마루마루

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엄마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소아정신과세요?'이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엄마가 잘 아시니까'이다.


첫 번째 질문인 '소아 정신과세요?'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는 성인만, 그것도 중독을 주전공삼아 보는 정신과 의사다. 그렇게 대답하면 상대방의 표정은 어딘지 아쉬워 보이기도 하고, 어딘지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아쉬운 것은 '이 사람이 소아정신과를 한다면 우리 애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정말 많은데'일 것 같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내가 차라리 소아정신과를 했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로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모른다. 타고난 기질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따라 같은 배에서 나와도 아이들의 모습은 완전히 딴판이다. 우리 아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 아이는 강렬한 감정이 개입된 대상이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볼 때와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된다. 그래서 항상 중도와 객관성을 지키려고 매우 노력하지 않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래서 나도 계속 정신과 전문의들이 쓴 책을 사서 읽고, 주변의 소아정신과 선생님들께 물어본다. '우리 아이가 이러저러한데 정말 괜찮나요?'라고 물어보시면 너무 죄송하지만 대답해 드릴 말이 없다. 아는 게 없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는 것도 어렵다. 그렇게 말하면 성의가 없어 보일까 걱정되고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데), 내가 실력 없는 정신과 의사인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그렇다고 조금 아는 지식으로 무언가 대답을 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내가 정신과의사이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은 그냥 아이 친구 엄마의 말 이상의 무게감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오늘 00 엄마를 만났는데, 글쎄 정신과 의사라는 거야. 근데 우리 아이 이러 저런 거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라고.'로 일파만파 퍼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차라리 정신과 의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두 번째 말인 '엄마가 잘 아시니까' '엄마가 오죽 잘하시겠지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보통 이 말은 내 직업을 아시는 기관 선생님들이 많이 하신다. 때로는 친구에게 '내가 이만저만해서 첫째한테 버럭 화를 냈지 뭐야'라고 이야기하면, '너도 그럴 때가 있어? 너는 절대 안 그럴 것 같은데'라는 답이 돌아온다. 나도 머리로는 안다. 아이들이 아무리 언어 발달이 빨라도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설명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며, 부모가 한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듣고 공감하고 감정을 읽어주는 것이 아이의 감정을 가장 빨리 가라앉히는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신과 의사는 내 직업일 뿐이고, 그것이 나의 모든 것은 아니다. 나도 사람이라 피곤하고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으며, 이유 없이 미운 감정이 들기도 하며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픈 자리만 골라 쏘아붙이기도 한다.


물론 정신과 의사라 좀 수월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아이가 같은 실수를 수없이 반복할 때, '환자들이 수백 번 재발하고 와도 언제나 다시 받아주는 내가 딸의 실수를 못 받아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고 한 번 더 마음을 가다듬는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자, 다시 해 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라 직업적으로 익숙해서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 엄마가 정신과 의사라고 내 아이의 심리를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다른 아이의 마음을 간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교과서에 나오는 것 같은 모범답안으로 아이를 대하는 것도 아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나보다 훨씬 공감 능력도 뛰어나고 아이에게도 친절하며 따뜻한 엄마들이 참 많다. 그들의 한없는 인내와 뿌리 깊은 사랑에 오늘도 반성하고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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