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시작: 바나나 좋아하세요?
바나나 좋아하세요?
원래 나는 바나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있으면 먹지만 굳이 찾아 먹지 않았다. 내게 바나나는 너무 달았고, 바나나가 아니어도 과일의 선택지는 많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바나나의 의미가 바뀌었다. 요긴한 이유식 재료이자, 휴대가 간편하여 어디서든 먹일 수 있고, 언제 먹여도 아이가 반겨주며, 영양가가 풍부한 간식이다. 집에서 바나나가 끊어질 날이 없고, 집에 바나나가 없으면 불안할 정도다. 내가 잘 먹게 되었을까? 그렇기도 하다. 매일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다 보니 마음이 열렸다. 이제는 바나나를 두고 두 아이와 경쟁을 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출산과 육아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 만나는 사람, 관심사, 여행지, 돈을 쓰는 방법, 독서, 집에 두는 물건들, 여가를 보내는 방법, 먹는 것, 사는 곳까지. 출산은 우주의 중심을 옮기는 일이다.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은 '이것이 아이에게 편안한가?' '이것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우주의 중심이 한 번 더 옮겨간다. '이것이 두 아이에게 미칠 영향은 무엇인가?' '첫째와 둘째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인가?' 그리고 '이것이 우리 모두 행복한 선택인가?'로 귀결된다.
엄마와 아빠의 삶은 출산과 육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녹아들었다. 고운 코코아가루가 따뜻한 우유에 녹아 코코아가 되듯이. 당신의 삶이 없어져서 아쉽지 않냐고 물어본다면 (이것은 나 자신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아쉬울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후회가 없다고 답한다. 육아로 인해 절대적으로 다른 일을 할 시간은 부족해졌다. 나처럼 호기심이 많고 여러 취미를 기웃거리는 사람에게 시간 부족은 매우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우주는 훨씬 넓고 깊게 확장되는 중이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의 폭도, 생각하고 고민하는 깊이도 확장되었고, 확장되고 있다. 고작 바나나 하나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이렇게 달라지는데 다른 것들이 넓어지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이 시대에 출산과 육아는 선택 사항이 되었다. 나 역시 한때는 이 길을 가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나 자신의 안녕과 성공, 커리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자의 반 타의 반 들어 선 이 길에서 얻는 지혜는 이전의 내가 상상할 수 없던 것이었다. (다른 길로 갔더라도 거기서 얻는 지혜는 상당했을 것이다.) 물론 힘들다. 많이 참아야 하고, 포기한다고 느끼는 것도 많다. 그러나 삶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기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를 포기해야 한다. 이미 내 손을 떠나버린 것과 할 수 없는 일보다 지금 내게 남겨진 것과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
두 아이를 낳고 일을 잠깐 쉬는 이 길은 이미 수많은 선배 엄마들이 간 길이다. 하지만 열 명의 엄마가 있다면 열 명이 모두 다르다고 확신한다. 나는 나의 언어로 이 길이 어떤 모습인지 남겨, 아직 가보지 않은 이 길에 대한 고민이 있거나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혼하지 않는 것, 결혼하고 아이 없이 사는 것, 아이를 하나만 갖는 것, 아이를 둘 갖는 것, 혹은 셋 이상 갖는 것. 결혼과 출산은 혼자만의 뜻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간절히 이 길을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고, 절대로 이렇게 살지 않으리 마음먹었으나 어쩌다 보니 이 길을 걷는 이도 있을 것이다. 지금 어떤 삶의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있더라도 당신의 길은 당신에게 옳다. 그 길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지 섬세하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꼭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