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육아휴직의 의미
일의 특성상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자주 있다. 내가 뚜렷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병의 치료에 관한 것 (아직 충분히 좋아지지 않았는데 치료를 조기에 중단하려 하는 경우)과 병이 악화될 가능성이 큰 선택 (중독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재발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 스스로를 몰고 가는 경우)이나 자신이나 남을 위험하게 하는 선택을 하려는 경우뿐이다. 하지만 병과 관련 없는 다양한 삶의 상황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 - 취직, 이직, 유학, 결혼, 육아에서의 선택, 퇴사, 가족 부양 등 - 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나도 사람이기에 '이분이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그것은 '나'의 바람이고 상대의 바람이 아니기 때문에 은연중에라도 나의 바람이 비치지 않도록 노력한다.
이럴 때 최대한 중립적으로 사안을 다루기 위해 '결정 저울'이라는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결정저울은 두 가지 선택을 두고 장점 (얻는 것)과 단점 (잃는 것)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나에게 두 번째 육아휴직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같기도 해서, 꽤 오랫동안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었기에 아래와 같이 써 보았다.
두 번째 육아휴직으로 얻는 것 (장점)
몸을 회복하고 두 아이와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
완벽한 워킹맘으로 살아내기 위해 지쳐 나가떨어졌던 나를 돌보는 시간
다음 진로를 고민할 시간
두 번째 육아휴직으로 잃는 것 (단점)
나를 믿고 따라와 준 환자분들을 케어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과 미안함
1년 3개월 분의 경제적 소득
커리어의 중단, 혹은 경력 단절로의 연결 가능성, 그로 인한 상실감과 공허감
복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결정 저울을 적어보면 두 번째 육아휴직에서 얻는 것은 시간이고, 잃는 것은 일에서 오는 정체성임을 알 수 있다. 만성 시간부족에 시달리는 워킹맘으로써는 어쨌든 얻게 되는 시간이 너무 귀하지만, 손실 혐오 (loss aversion: 잃는 것에 대한 불쾌, 두려움 등)로 인해 육아휴직을 결정하는 것이 끝까지 어려웠다.
업력이 쌓이면서 주변에 경력이 무르익는 사람들을 보니, 나의 커리어의 어딘가가 '아이'로 인해 정체되거나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둘째를 계획하면서 나는 연구 참여를 거절하고 많은 일을 주저했으며 하고 싶은 일도 적당한 선에서 끊어버릴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없었다면' '둘째를 가질 생각이 아니라면'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일들은 아이를 낳고 나중에 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아쉬워하지 않으려 했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의 열정과 체력으로 해내고 싶다는 욕심도 함께 들었다. 그러다 보니 출산과 육아 걱정에서 자유로워 보이는 남자 의사들이 부럽기도 했다. 비교적 이직과 재취직이 용이한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나조차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치열한 경쟁 끝에 남부럽지 않은 회사에 취직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온 여성들에게 출산, 그것도 둘째의 출산은 '나'의 정체성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육아휴직을 정말 일을 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혹은 그 이상 몸은 고된데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 월급 주는 직장에서 월급 주지 않는 직장으로 옮겨갔을 뿐 노동은 이어진다. 첫 육아휴직은, 생애 처음으로 '출근하지 않는 날들'이었을 뿐 노동을 하지 않는 날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은 사회인이 된 후 한 번도 떠나보지 않은 '일'과 처음으로 거리를 두며 나를 돌아보고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 돈은 알아서 모인다는 생각을 깬 것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리셋된 것도 첫 육아휴직 때였다. 복직 후 만성 시간 부족에 시달리며 곧 찢어질 것 같은 다리를 움켜쥐며 나를 채찍질했던 나에게 두 번째 육아휴직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 이상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버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것이 두 번째 육아휴직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세 달의 출산휴가를 지나며 육아휴직 기간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