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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마루 Jun 16. 2021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고양이 손을 빌릴 수 있다면

  나는 2012년 12월 집사로 간택되었다. 길고양이 출신의 구구는 네 마리의 새끼를 배고 퇴근하는 내 뒤를 쫓아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한 번은 내보냈는데, 그다음은 내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구구는 2013년 2월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출산하였고, 모성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내가 새끼 고양이들을 구경하면 한 마리씩 목덜미를 잡아 구석진 곳으로 옮겼고, 옮길 수 없을 때는 내 등에 달려들어(평생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나를 위협했다.


  내가 출산할 즈음 구구는 뚱뚱한 할머니 고양이였다. 게으르고 움직이기 싫어해서 캣타워는 치운 지 오래였고 대부분의 시간 내 옆에 조용히 앉아있거나 할 말이 있으면 나직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구구의 집사이자 엄마였고 구구는 나의 소울메이트였다.


  마루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구구는 사실 마루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았으며, 일광욕이나 집안 순찰 같은 자기 할 일을 하며 지냈다. 그런데 백일 지날 무렵부터 구구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갑자기 마루 곁을 맴도는 내 주변을 맴돌면서 머리를 비벼대고 더 애옹애옹 울어댔다. 나는 구구가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느꼈다. '엄마가 저 작은 생명체 곁을 떠나지 않은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군. 이만하면 우리 집에서 나가줄 만도 한데 아직도 저기에 있네. 무슨 일이 생겼다. 큰일 났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나도 한 번 봐줘.' 마루를 돌보느라 구구와 단둘이 시간을 거의 보내지 못한 지 3개월이 지나자 구구가 위협감을 느낀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손이 두 개여서 두 손으로 아기를 안고 구구까지 쓰다듬어줄 수 없었다. 나는 구구와 마루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구구에게는 "구구야 마루랑 친하게 지내줘. 마루는 아직 너보다 작지만 곧 너보다 커질 거거든. 어쩌면 마루가 널 아프게 할 수도 있어. 그러면 재빨리 피해 줘. 마루는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닐 거야"라고, 마루에게는 "마루야 너는 구구를 괴롭히면 안 돼. 구구는 나이 들었고 아파. 구구에게 친절하게 해 줘."


  나는 주방이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구구에게 '구구야 마루 좀 잠깐 봐줘'라고 말했다. 종종 이모님이 오시기는 했지만 절대적으로 긴 시간 육아에 매달리다 보니 화장실 갈 틈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다. 종종 아기띠를 한 채로 일을 봐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 (猫の手でも借りたい)'라는 일본 관용어를 떠올렸다. 이 말은 매우 바쁘고 일손이 부족하여 아무리 사소한 도움이라도 받고 싶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정말 그랬다. 구구가 마루와 친해지고 구구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구구가 앞발로 마루 가슴을 지그시 눌러준다면 마루가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잘 수 있을 텐데. 구구가 애옹애옹 노래를 불러 마루를 재미있게 해 준다면, 구구가 마루를 관찰하다가 마루가 깨면 나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내가 화장실에 갔을 때 구구가 잠깐 마루의 관심을 끌어준다면, 정말 육아의 차원이 달라질 텐데.


  구구 입장에서는 성가신 존재를 돌봐달라고 하니 어이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구구는 육아에는 별로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가끔 마루가 잘 때 쓰윽 쳐다보러 오기는 했지만 가능하다면 멀리 있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구구가 마루를 싫어한 것 같지는 않다. 마루가 조용하면 구구는 궁금해했다. 자고 있으면 가까이에 관찰하러 오기도 했다. 구구는 나름의 방식으로 마루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루는 구구를 너무 좋아했다. 마루는 항상 구구를 쫓아다녔다. 구구는 마루에게 여러 차례 귀나 털을 뜯겼지만 한 번도 마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유유히 소파에서 뛰어 내려와 마루가 쫓아오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도망갈 뿐이었다. 구구가 울면 마루는 배시시 웃었다. 장난감에서 나오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반가워했다. 벽에 걸린 구구 그림을 보았고 나중에 ‘구구 어딨어?’라고 물어보면 그 그림을 쳐다보았다. 마루에게 구구와 어울리는 것은 나름의 사회생활이었지 싶다.


  비록 구구는 손을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육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주었다. 고양이 손은 빌릴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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