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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둘째 엄마의 산후조리원 행은 사치일까?

by 마루마루

첫째 때는 조리원에 가는 것을 고민하지 않았다. 갓난아이를 보는 법을 전혀 모르기도 하고, 출산이 몸에 어떤 변화를 줄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하고 나니 조리원에 꼭 가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일단 첫째가 가장 눈에 밟혔다. 직장에 다녀서 아이에게 항상 죄책감이 컸다. 엄마의 케어가 부족해도 알아서 쑥쑥 크는 첫째가 대견하고 미안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산후도우미를 쓰고 조리원에 가지 않을까 고민했다. 예상 밖의 복병은 친정 엄마의 분노였다. '왜 조리원에 안 가! 당연히 가야지!' 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기 싫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남편도 '괜찮다. 알아서 할테니 여기는 맡겨놓고 너는 쉬어라.' 라고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동네 맘카페에 의견을 물어보니 3/4 정도가 '무조건 조리원에 가야 한다!'였고 1/4는 '첫째 때문에 집에서 했지만 괜찮았다' 였다. 일단 조리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은 출산휴가를 단 하루도 낼 수가 없었다. 개인 휴가를 써서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기는 날만 도와주기로 했다. 첫째는 대체로 작년보다 감기에 덜 걸리고 건강했지만 혹여라도 무슨 일이 생길 수 있기에 집에서 가까운 조리원으로 예약했다. 아이의 등하원에 맞춰 양가 어른들과 남편 스케줄을 조정했다.




나는 무사히 출산을 마치고 조리원에 입소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가 여름 감기에 걸린 것이다. 원래 애들은 원래 겨울 내내 콧물 달고 살고 겨울의 반은 감기약을 먹으며 보낸다.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과 물놀이의 여파로 감기에 걸리며, 이 여름감기는 겨울 감기보다 더 독하다. 첫째는 두 돌 한여름에 심한 폐렴으로 1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는 에어컨에 노이로제가 생겼다. 가능하면 에어컨을 켜지 않고 여름을 나고자 노력했으며, 여름일수록 아이의 보온과 체력 안배에 힘을 썼다. 그런 일은 대개 내가 하는 일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내가 유난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없으니 놀고 땀 흘리고 그냥 자고, 덥다고 하니 에어컨을 밤새도록 쌩쌩 틀어놓았던 모양이다. 내가 조리원에 입소한 날부터 아이는 밤새도록 기침하느라 잠을 못 자고 토하고 입맛이 없어 밥도 제대로 못 먹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엄마가 없다. 원래도 엄마 껌딱지인 첫째에게 엄마의 부재는 면역력에 타격을 줄 만한 일이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엄마는 동생을 낳으러 간다고 하고 사라져버렸으니 얼마나 불쾌했을까. 아무리 출산을 위해 병원에 갔다, 아직 아파서 조리원에 있다고 설명해줘도, 겨우 38개월짜리에게는 '그냥 엄마가 사라진 일'일 뿐이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염두에 두고 짜둔 스케줄도 감기로 모두 꼬였다. 그나마 아이와 가장 애착이 있는 외할머니도 자신의 스케줄을 뒤로 하고 와 주셨으나 직장을 절대 비울 수 없는 날이 있었다. 친조모와 첫째는 소원했기에, 종일 아이를 봐달라 하는 것이 서로에게 고역일 터였다. 눈 딱 감고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안 그래도 출산으로 호르몬이 요동치는 나는 첫째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났다. 결국 나는 조리원 2주 차에 거의 매일 외출하여 마스크를 쓰고 집에서 첫째를 케어하고 퇴근하는 남편과 손을 바꿨다. 남편은 종일 일하고 밤에는 아픈 아이를 케어하며 2주를 버텨냈다. 남편도 내가 있는 게 안심이 되는 눈치였다.




머리에 해열 패치를 붙이고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첫째를 보면 너무 안쓰럽러웠다. 이렇게 백업 시스템이 미약한데 무슨 배짱으로 조리원에 간다고 했을까. 내게 두 번째 조리원 행은 사치였을까. 세상에 많은 둘째, 셋째 엄마들이 조리원에 가서 밀린 드라마도 보고 잠도 실컷 잔다는데. 다른 엄마들에게는 꿀같은 휴식이었겠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그렇지 못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의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이라면 눈 딱 감고 3주도 가능할 것 같다. (웃음)


조리원에 가지 않았다면 몸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해서 (아무리 자연분만이라고 해도 제대로 앉으려면 1주일은 필요하다) 아이도 못 보고 나도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2주 내내 눈 꼭 감고 있었다면 마음이 불편해서 안절부절 못 했을 것이다. 그때 그 선택은 우리 모두에게 최선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나에게는 1주일 정도의 절대적인 휴식이 필요했고, 첫째에 대한 미안함을 씻고 퇴소 준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머지 1주는 외출이 필요했다고 합리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로 합리화는 정신건강에 매우 이롭다.




혹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조리원을 고민하는 분께 드리고 싶은 조언이 있다.


1) 아이의 상황에 따라, 가정 상황에 따라 조리원 행은 선택입니다. 주변의 의견에 휘둘리지 마시고 자신의 상황을 잘 파악하고 판단하세요.

2) 조리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자연분만의 경우 최소 1주일은 조리원을 가시기를 권합니다. 1주 이후는 회복 속도에 따라, 처하신 상황에 따라 선택입니다. (단 이 조언은 자연분만에 해당되며, 제왕절개는 제가 경험이 없어 조언을 못 합니다.)

3) 조리원에 갈 때는 아이가 매우 아플 때를 대비하여 (갑작스런 입원도 있을 수 있음) 풀 백업을 미리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저처럼 고생하지 마세요.)

4) 첫째의 심신 상태가 일시적으로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다 회복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이의 나이에 따라 아무리 설명해줘도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리 이야기는 해주시되 못 알아들었다고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5) 여러 상황으로 조리원에 가지 못하더라도, 또는 반대로 조리원에서 예상 밖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너무 좌절하거나 자책하거나 주변을 미워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상황은 풀리게 마련입니다.

6) 조리원 취소 가능한 마지막 시기 (대개 입소 예정 1달 전) 에 계약 시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상황이 바뀌었는지 꼭 확인하셔서 대비하세요.

7) 조리원에 입소하셨다면, 마사지는 최대한 많이 받으세요. (저는 조리원에서 추가 마사지를 받았는데, 나와서는 한 번도 못 했습니다. 첫째 때는 조리원에서 나와서 출장 마사지도 두 달 넘게 받았는데 말이죠.. 다둥이 엄마에게는 그런 시간을 마련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8) (옵션) 둘째와 시간을 많이 보내세요. 저는 제가 잘 때까지 모자동실 시간이 아니어도 둘째를 계속 끼고 있었습니다. 그 시기의 신생아는 수유할 때 빼고 거의 다 자니까 같이 있어도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면 자는 대로 옆에서 뒹굴고, 깨면 깨는대로 데리고 놀아주세요. 둘째와 그렇게 오붓하게 있을 시간이 집에 가면 없습니다. (이것은 아이의 기질과 엄마의 상태에 따라 선택하세요. 많이 울고 잘 달래지지 않는 신생아도 있고, 회복이 아주 오래 걸리는 산모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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