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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5개월, 43개월과 함께 하는 어느 주말의 풍경

by 마루마루

새벽 5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주말이라 더 자고 싶지만, 주말이기 때문에 새벽시간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7시, 둘째가 배고파서 깬다. 수유를 하고 토닥여서 7시 40분쯤 다시 재운다.


8시 반, 아이들을 깨운다. 10시에는 첫째의 미술학원 수업이 있다. 첫째가 34개월이던 어느 하원길, 갑자기 '엄마 미술학원에 가고 싶어요'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가기 싫다고 한 적 없는 유일한 사교육이다. 하지만 주간의 피로가 누적되어서일까, 첫째는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결국 둘째가 먼저 일어나 침대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다. 데리고 나와 기저귀를 갈아주니 뒤집고 배밀이 연습을 시작했다.


9시, 첫째를 억지로 깨워 세수하고 칫솔질하고 옷을 갈아입힌다. 가방에 차에서 먹을 아침 간식을 챙긴다. 가방에 챙길 게 더 있다. 미술학원 끝나고 다 같이 놀러 나가서 먹일 둘째 밥이다. 젖병, 분유 물, 약간의 간식. 첫째를 먼저 모두 입히고 둘째를 아기띠로 둘러멘 다음, 한 손에는 첫째 손, 한 손에는 가방 두 개를 챙겨 집을 나선다.


10시, 첫째의 미술 수업이 시작되고 나는 말똥말똥한 둘째를 데리고 학원 복도를 걷다가 심심해서 괜히 커피를 사러 나갔다가 친정 엄마와 통화도 한다. 10시 40분, 미술 수업이 끝나고 물감 범벅이 된 첫째가 상기된 표정으로 나온다. 아기띠를 메고 수돗가에서 첫째의 손과 발을 닦아 주고 있으면, 내가 안쓰러워 보이는지 먼저 아이들을 씻긴 어머님 아버님 학원 선생님들께서 도와주신다. 이 은혜를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11시, 아직 근무 중인 남편을 두고 셋이 쇼핑몰에 간다. 쇼핑몰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저귀 교환과 수유가 편한 곳. 둘째가 스스로 설 수 있어서 기저귀 갈이대가 없는 화장실에서도 기저귀를 갈 수 있게 되면 외출 선택지는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백화점과 쇼핑몰마다 유모차를 끈 부모들이 이리 많은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괜히 쇼핑몰을 휘휘 돌아다닌다. 세상 물정에 막 눈을 뜬 첫째는 보는 것마다 의견을 제시한다. 요즘의 화제는 '마네킹'이다. 저 마네킹은 얼굴이 없네, 이 마네킹은 아기 마네킹이네, 나무로 만들었네, 눈이 웃기게 생겼네 등등. 그리고 끝은 '엄마 듣고 있어?' '엄마도 봤어?'다. 호응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점점 키워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므로 듣자마자 대답을 해준다. 둘째는 유모차 안에서 천장의 불빛에 매료되어 천장을 쳐다본다.


12시 반, 식사는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한다. 한식이라면 설렁탕과 곰탕, 미역국, 양식이라면 스파게티, 일식이라면 돈가스 안에서 선택하게 된다. 아직 둘째가 아기의자에 못 앉기에 유모차를 반입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고 구석자리에 앉는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사이에 분유를 재빨리 타서 둘째에게 먹인다. 음식이 나오면 한 사람이 첫째를 먹이면서 빠르게 먹고, 나머지 한 사람이 둘째를 먹인다. 먼저 먹던 사람이 다 먹으면 손을 바꿔서 둘째를 봐주고 나머지 사람이 첫째를 마저 먹이면서 자신도 빠르게 먹는다. 초반에는 이게 잘 안 돼서 손으로 막 먹이고 있었는데 이제는 스킬이 많이 늘어서 수저와 젓가락으로 먹여줄 수 있게 되었다. 셋이서 나왔어도 할 수 있다. 첫째 손을 깨끗하게 씻어주고 손과 수저와 포크로 알아서 먹게 잘라준 다음 둘째를 먹이면 된다.


1시 반, 밥을 다 먹고도 집에 가기 아쉬운 첫째와 한 바퀴 더 돌면서 디저트를 탐색한다. 첫째는 요즘 배가 많이 고프다. 점심을 꽤 많이 먹었는데도 금방 배고프다며 디저트를 먹자고 한다. 같이 디저트를 먹고 이제 집에 가자고 설득한다. 눈에 졸음이 가득한데도 첫째는 집에 가기 싫다고 한다. 둘째는 유모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지 오래다.


예상대로 첫째는 차에서 곯아떨어진다. 차에서 내리면서 설핏 잠에서 깬 첫째는 '나 아주 조금만 잘 거야'라고 하면서 침대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오면서 둘째는 깼다. 기분 좋은 흔들림이 느껴지는 유모차와 차 안에서 잘 잤기 때문에 누구보다 개운하다. 둘째와 같이 놀아주고 틈틈이 집안 정리를 하다 보면 첫째가 깬다.


5시 반, 저녁 식사 전에 목욕물을 받아서 두 아이를 한꺼번에 넣는다. 부쩍 커서 목튜브가 불편해진 둘째를 먼저 건져주고, 둘째를 남편이 케어하는 사이에 첫째와 잠깐 목욕물에 몸을 담근다. 물이 점점 차가워질 때쯤 첫째도 건져서 밖으로 보내고 씻고 나온다. 둘째가 세 번째 우유를 먹고 잠에 들면 이 시간만 기다린 첫째와 열심히 놀아준다. 소꿉놀이, 역할놀이, 그림 그리기, 못다 한 놀이들이 장난감 상자에서 끊임없이 나온다.


7시, 다 같이 저녁을 먹고 나면 둘째가 일어난다. 이번에는 둘째와 첫째를 앉혀놓고 그림책을 읽어준다. 첫째 수준에 맞는 이야기라 꽤 어렵지만 둘째도 열심히 듣는다. 배고픈 둘째와 첫째에게 과일 간식을 준다. 둘째는 과즙망이 찢어지도록 과일을 먹는다. 첫째가 자기도 과즙망에 과일을 달라고 한다. '너는 이가 있어서 과즙망이 찢어져. 이렇게 먹는 게 더 맛있을걸?' 하며 첫째를 위로해 준다. 과일로 애피타이저를 해치운 둘째는 이제 우유를 달라고 짜증내기 시작한다. 이제 아빠에게 맡기고 첫째를 데리고 잘 시간이다.


9시 반, 급한 집안 정리만 해두고 첫째 이를 닦아준 다음 내가 칫솔질하는 동안 자기 전 읽을 책을 고르라고 시킨다. 첫째는 자기가 꽂힌 책을 주야장천 반복해서 외울 때까지 읽는 스타일이다. 네 권을 골랐는데, 이 중 세 권이 어제도 읽은 책이다. 첫째와 침대에 들어가서 하나씩 읽다 보면 세 번째 책을 읽어주면서 이미 나는 졸고 있다. 마지막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나는 잠에 들었다. 첫째가 옆에서 '엄마 이거 다 읽은 거 맞아?'라고 물어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하지만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벽 1시 40분, 둘째가 낑낑대는 소리에 일어난다. 왜 못 잘까? 크느라 팔다리가 불편해서일까, 이가 나려 해서일까, 코가 막혀서일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참을 안아서 달래준다. 2시 20분, 둘째가 품에서 곯아떨어진다. 잘 자라 아가. 이제 엄마도 잘게.


(주말에 문자나 전화에 답장이 매우 느린 건, 당신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정말 바빠서랍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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