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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부모에게 필요한 건 망각력

by 마루마루

둘째가 본격적으로 이가 나기 시작하면서 한밤중에 깨기 시작했다.


새벽 2시가 못 된 시간. 어김없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기침대를 들여다본다. 둘째가 한 손으로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나머지 손으로 침대 벽을 긁고 있다. 가슴을 토닥여준다. 쉬이 잘 것 같지 않다. 빨리 재우려고 아기띠를 둘러멘다. 아기띠가 답답한지 몸을 뻗댄다.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내려놓는다. 바닥에서 뒤집고 배로 밀며 신이 났다. 하지만 여전히 졸린 듯 눈을 비비고 있다. 내가 너무 졸리다. 다시 침대로 데려간다. 네가 여기서 뒤집던 놀던 알아서 하거라, 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옆에서 뒤척이고 침대 벽을 긁으며 웅얼대는 소리에 잠이 올 리 없다. 어떻게 되나, 내버려 둔다. 2시간쯤 뒤척이고 침대 벽을 긁으며 웅얼대더니, 기어이 배가 고픈 듯 짜증 섞인 울음소리를 낸다. 그래도 내버려 둔다. 점점 울음소리가 커지며 첫째와 남편이 뒤척이기 시작한다. 새벽 4시. 결국 수유를 한다. 배가 부른 아기는 잠에 든다.


다음 날, 또다시 새벽 2시가 못 된 시간. 어김없이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아기침대를 들여다본다. 졸린 눈을 비비며 한 손으로 침대 벽을 긁고 있다. 어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 아기띠를 서둘러 메는 대신 아기를 좀 더 살펴본다. 배가 고픈 것 같지는 않고, 잠이 덜 깼는데 몸이 불편해 보인다. 첫째가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첫째도 이앓이를 심하게 했는데, 좀 더 날카로운 울음이었지. 지금은 이앓이보다는 몸이 크느라 용쓰는 느낌에 가깝다. 엄마들이 신생아가 오징어 굽는다고 했던 그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는 안아주면 그 온기 때문에 더 잘 잤던 것 같다. 내 침대로 데려와서 옆에 눕힌다. 팔베개를 하고 꼭 안아준다. 거짓말 같지만 용쓰는 게 줄었다. 조금 더 토닥여준다. 눈은 여전히 꼭 감고 있는 것을 보니 곧 잘 것 같다. 곧 잘 것 같다. … 다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다. 이제는 배가 고파서 우유를 먹겠다고 깬 것 같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고 있다.




같은 새벽 2시여도, 매일 다르다. 밤만의 문제가 아니다. 패턴이 시계처럼 정해진 아기들도 있지만, 우리 집 둘째는 느슨한 패턴 안에서 자유분방하다. 대략적인 취침과 기상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수유와 이유식 시간, 낮잠 시간은 매일 다르다. 게다가 어떤 패턴에 겨우 적응하려 하면 아이들은 금세 바뀐다. 수유 텀과 놀이 패턴에 적응했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패턴을 깨버린다. 습관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재우는 게, 이렇게 놀아주고 먹이는 게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금세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 아이들, 특히 영아(infant)이다. 그만큼 빨리 크고 새로운 것을 빠르게 흡수한다.


문제는 부모의 관성이 이 패턴의 변화무쌍함을 따라가기에 너무나도 버겁다는 것이다. 부모는 어른이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체력도 소모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한 번 바뀌면 그만이다. ‘왜 이번엔 이렇게 안 돼! 어제까지는 이렇게 하면 됐잖아!‘ 라며 어제의 패턴에 집착하는 부모는 아이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에게 필요한 건 망각력, 잊어버리는 힘이다. 원래 인간은 망각을 하도록 디자인되어 있다. 잊어버릴 수 있어야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옛 기억을 깡그리 잊으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면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강렬한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되어 옛 기억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첫째는 쪽쪽이 (공갈젖꼭지)를 거의 24개월까지 물고 살았지만, 둘째는 6개월이 되더니 갑자기 퉤 뱉어버렸다. 정말 '언제 내가 쪽쪽이를 했다고!'라고 말하듯, 갑자기 끊어버렸다. 그간 쪽쪽이로 재우던 것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뒤바뀌어 버렸다. 곧 아기띠가 답답하니 그냥 누워서 자겠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변화가 있을 때 옛 습관에 집착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 과거는 기억 속에 남겨두고 (곧 사라질 것이다) 새 패턴에 적응하는 것, 또다시 나타날 새로운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육아의 일상이다. 변화가 일상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은 크고 작은 변화와 선택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육아는 삶의 압축판인 것 같다.


또 내일은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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