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네 가족의 고속도로 장거리 여행

by 마루마루

모처럼 여행을 떠난다. 행선지는 부산.

부산으로 가는 길은 400km 남짓. 휴게시간을 포함해서 5시간 이상의 여정이다. 이제 곧 유치원생이 될 첫째와 갓 6개월이 된 둘째는 각자의 카시트에, 남편은 운전석에, 나는 조수석에 탄다. 우리는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바로 출발한다. 하루를 고되게 보낸 덕에 두 아이 모두 출발과 동시에 곯아떨어진다. 우리 부부는 평소 시간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부가 오붓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포근하고 따뜻한 동지애가 앞 좌석을 감싼다.


먼저 일어난 건 둘째. 배가 고플 시간이다. 입을 쩝쩝대고 두리번대더니 이내 울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첫째도 깼다. 우리는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다녀온다. 나는 첫째와 둘째의 카시트 사이에 앉는다. 둘째를 먹이기 위해서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수유실이 있다. 그러나 많은 수유실이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관리 상의 이유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기가 8시 넘어서 배가 고프면, 차에서 먹여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 의자에 앉지 못하므로 안고 먹여야 한다). 카시트 두 개로 꽉 찬 뒷자리, 가운데 영차영차 낑겨들어 둘째를 팔에 끼고 수유를 한다. 둘째 발에 치이는 첫째는 ‘엄마, 얘가 자꾸 날 차요’라고 불만을 표현한다. 어쩔 수 없다. 다행히 매우 배가 고팠던 둘째는 20분 만에 분유 240ml를 뚝딱 해치우고 트림까지 시원하게 해낸다.


아직도 갈 길은 두 시간 넘게 남았다. 첫째는 최근에 새로 사 준 어린이 컴퓨터 장난감을 10여 분 두들기더니 내려놓는다. 심심하단다. 노래를 들을까. 끝말잇기를 할까. ‘엄마, <리리릿자로 끝나는 말은>이 끝말잇기야?' 첫째가 묻는다. 끝말잇기가 뭔지 설명해 준다. 아직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첫째는 들리는 대로 말하면서 끝말잇기를 해낸다. 금방 지루해진다. 첫째는 부산에 언제 도착하는지 묻는다. 아직 한참 남았다고 답해준다. 수영장에는 오늘 가느냐고 묻는다. 오늘 밤에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밥 잘 먹고 수영장에 갈 거라고 답해준다. 그러면 내일 집에 가느냐고 묻는다. 세 번 잘 거라고 답해준다. 아직 세 번을 잔다는 개념은 없지만, 내일 집으로 바로 가는 건 아니라고 이해한 듯하다. 잠깐의 침묵. 엄마 심심해요, 놀아주세요. 깜깜한 차 안, 실내등을 켜 놓았지만 뭔가를 하고 놀기는 쉽지 않다. 놀이를 생각해 낸다. 그러면 동물 다리 개수 알아맞히기 놀이할까? 그래, 좋아요. 멍멍이 다리는 몇 개지? 네 개. 꼬꼬닭 다리는 몇 개지? 두 개. 아빠 다리는 몇 개지? 두 개. 오징어 다리는 몇 개지? 열다섯 개. (첫째에게 열다섯은 ‘매우 많아서 셀 수 없다’라는 뜻이다) 아니야. 엄마 손 봐 봐. 몇 개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아홉 열 열하나. 여덟을 빼먹었어. 다시 세 봐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맞아, 오징어 다리는 열 개야. 그러면 문어 다리는 몇 개지? 열 개? 모르겠어요. 자, 봐 바. 막대 하나, 막대 하나, 산이 되었네 (산 산 산). 막대 둘, 막대 둘, 집게발이 되었네. 막대 셋, 막대 셋, 참새가 되었네 (짹 짹 짹). 막대 넷, 막대 넷, 문어 다리 되었네. 이거 봐, 네 개와 네 개를 더하니 몇 개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여덟 개 맞아. 문어 다리는 여덟 개. 이러는 사이에 톨게이트를 내리고 부산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제 다 왔어.




삼 박 사일의 즐거운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왔다. 돌아가는 길도 똑같이 400km 남짓. 호텔에서 체크아웃하고 한참 놀고 오후 느지막이 출발했다. 역시 하루를 고되게 보낸 두 아이는 출발과 동시에 곯아떨어진다. 운전을 하던 남편도 꽤나 버거워한다. 이번에는 내가 나눠서 할게. 남편을 거의 억지로 조수석에 앉혔지만 나의 운전이 사뭇 불안했는지 자지 못한다. 우리 부부는 저녁 식사를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토론한다. 집까지 가면 못 해도 8시인데 그때 밥 먹으면 너무 배고프지 않을까? 이천에서 먹을까? 집 근처까지 가보면 어때? 내가 ‘이천쌀 휴게소’에서 먹자고 하자, 세상에 이천 휴게소도 아니고 이천쌀 휴게소가 어딨냐며 깔본다. (그러나 우리는 중부고속도로에서 이천쌀 휴게소를 발견했다. 그리고 결국 밥은 집에서 먹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둘째가 먼저 일어났다. 우리는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화장실에 다녀온다. 나는 다시 첫째와 둘째의 카시트 사이에 앉는다. 아직 8시는 안 됐지만, 차가 막히고 휴게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차에서 먹이기로 했다. 첫째 손에는 간식을 들려주고 둘째를 먹인다. 역시 매우 배고팠던 둘째는 20분 만에 분유 280ml를 뚝딱 해치운다. (평소에는 40분 이상 걸린다. 시장이 반찬이다.)


주말이라 도로에는 차가 많다. 집까지는 아직 두 시간 넘게 남았다. 둘째는 흔들리는 모빌에 마음을 뺏겨 여념이 없다. 첫째는 지루하다. 엄마, 노래 틀어주세요. 에메랄드 미니특공대요. 어린이집 친구가 부르는 미니특공대 노래라고 한다. 음악 앱에서 미니특공대를 검색하니 노래가 여럿 나온다. 이 중에 뭐가 에메랄드 미니특공대일까? 하나씩 들어보다가, ‘미니특공대 애니멀트론 주제곡’을 발견한다. 이거네 이거! 세상에 이게 뭐라고 이토록 반갑다. 노래를 틀어보자 ‘애니멀트론, 미니특공대~’라고 한다. 만화 주제가는 길어야 일 이분이어서, 첫째는 몇 번을 반복해서 틀어달라고 한다. 그렇게 듣다 보니 ’애니멀트론 미니특공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라고 노래 부르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도 매우 큰 소리로. 우리는 시크릿쥬쥬, 티니핑, 포켓몬 주제가를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불렀다. 그렇게 차 안에서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 사람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 부산까지 운전해서 가는 게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어본다. 체력적으로는 고되다. 힘든 순간도 있다. 그러나 차로 이동하는 긴 시간은 일상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기이하고 특별한 경험이다. 모두가 함께 타는 비행기나 기차가 아니어서, 우리끼리 신나게 떠들고 노래하고 맘껏 먹을 수 있다. 일상의 의무와 페르소나를 팽개치고 큰 소리로 노래하고 말도 안 되는 퀴즈를 내며 깔깔 웃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런 순간 때문에, 이 모든 짐을 기꺼이 이고 지고 아이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