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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엄마랑 놀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

by 마루마루

첫째가 11개월에 복직했다. 첫째는 집에서 봐주시는 이모님과 꼬박 10달을 지내다가 21개월에 어린이집에 갔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어린이집에 적응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싫어 울거나 등원을 거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동생이 생기고도 어린이집을 거부한 적은 없었다.


5살이 된 첫째는 유치원에 가게 되었다. 걱정과 달리 처음 타는 셔틀버스에도, 훨씬 큰 환경과 많은 사람들에도 쉽게 적응하는 듯했다. 선생님도 첫째가 씩씩하고 스스로 하는 어린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셋째 주쯤일까, ‘오늘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내심 놀랐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알겠다고 다독여주었다. 다음 날, 집에 오는데 ‘유치원에서 울어서 선생님 교실에서 놀았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응? 어제도 울었다고 했잖아. 오늘도 울었니?' 묻자 그렇다고 한다. 왜 울었냐고 묻자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또 다독여주었다. 그다음 날,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라고 하는 것이다. 며칠 연속으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유치원 선생님께 여쭤보니, 이번 주 들어 영어 시간에 종종 운다고 한다. 반면 한국어 시간에는 친구들과 잘 논다고 한다. 영어를 처음 접하는 첫째에게 매우 낯설었을 것이고,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되니 힘들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이즈음 ‘엄마와 놀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가 늘어났다. 아침 셔틀을 놓치지 않기 위해 7시 반에 깨우면, 가수면 상태로 아침을 먹고 등원 준비를 하면서 ‘엄마랑 놀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 ‘는 말을 자주 했다. 주말을 신나게 놀고 난 월요일에는 아침 내내 엉엉 울어서 셔틀을 타지 못했다. 이때도 우는 이유는 ‘엄마랑 놀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였다. 어떤 날은 ‘오늘은 엄마가 많이 필요해요’라고 해서 마음이 뭉클했다. 더 안아주고 다독여 보았으나 어떻게 해도 울음을 그칠 줄 몰라 결국 인내심이 바닥을 쳐서 화를 내버렸다. 첫째는 엉엉 울면서 유치원 셔틀에 탔는데 다행히 유치원에서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셔틀에서 내렸다. 그날 이후로 그렇게 극적으로 우는 일은 없어졌으나, 여전히 아침마다 ‘엄마랑 놀고 싶다’는 실랑이를 하고 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 엄마랑 놀고 싶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말 그대로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랑 놀고 싶다는 뜻이겠지만, 언어표현력이 아직 부족한 어린아이임을 감안했을 때 훨씬 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 나도 가끔 힘든 일에 부딪히거나 지치거나 마음이 괴로우면 ‘엄마 보고 싶다’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나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드라나마 영화, 심지어 광고에서 등장하는 ‘엄마’가 주는 보편적 정서는 ‘나를 응원하고 위로해 주는 든든한 내 편‘이기 때문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류 보편의 정서, 혹은 유전자에 각인된 특성은 아닐까.


이 글을 쓰는 이제야 나는 첫째의 마음을 어렴풋이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겉으로는 잘 적응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지만 사실 무지 애를 쓰고 있어서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 조금 힘들지만 잘하고 있다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 질 수 있어. 그만큼 네가 애쓰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 같구나. 갑자기 바뀐 환경이 낯설겠지만 엄마가 깜짝 놀랄 정도로 너는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 이 모든 노력에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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