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예뻐지고 싶단다
나도 한때는 감각적인 사람이었다. 도전적인이고 감각적인 옷과 신발, 가방을 찾아다니는 것이 취미였다. 비싸지 않아도 나의 나됨을 보여주는 소품에 집중했다. 옷장 속은 화려하고 다채로웠다.
첫째 출산 후 육아휴직을 하면서 옷장이 단순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식도 괄약근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 시기에는 많이 토한다. 조금 지나서 이가 나려면 침을 많이 흘린다. 빨래하기 쉽고, 바닥에 앉아서 활동하기 쉬운 옷들이 옷장을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직장 생활을 할 때 입던 셔츠와 슬랙스, 다양한 기장과 색깔의 치마들은 옷장 깊은 곳에 들어가야만 했다. 복직하고 나니 나이가 들어 예전에 입던 과감한 프린팅이나 색깔은 피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관리의 불편함 때문이었다. 좀 더 차분한 색과 디자인의 옷들이 옷장을 차지했다.
그리고 둘째를 출산했다. 또다시 옷장은 입고 벗기 쉬운 옷, 빨래하기 쉬운 옷, 더러워져도 금방 티가 나지 않는 옷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바닥 생활을 해야 하니 치마는 언감생심이고, 바지도 고무줄이 달렸거나 매우 편한 것으로 찾는다. (하지만 아이가 커서 잡고 서기 시작하면, 고무줄 바지나 치마는 모두 질질 끌려 내려가므로 안 된다.) 더러워지면 드라이클리닝을 맡겨야 하는 니트는 피하고 맨투맨과 티셔츠를 입는다. 발이 시려 수면양말도 신는다.
옷을 사볼까 싶어 쇼핑몰에 가면 나도 모르게 먼저 아이들 옷 코너를 찬찬히 둘러보고 있다. 점점 커가면서 옷이 맞지 않으니 계절마다 옷을 사줘야 한다. 벌써 첫째 것 한 벌, 둘째 것 한 벌을 계산했다. 정신을 차리고 성인 여성 옷가게에 들어가 본다. 그런데 딱히 입고 싶은 옷이 없다. 나는 크지도 않고 살이 급격히 찌거나 빠지지도 않으니 옷을 사야 할 절대적 필요도 없다. 그래도 아쉬우니 지금 당장 입을 만한 옷을 한 벌 사볼까 생각했는데, 복직하면 입지 않을 잘 입지 않을 트레이닝복이나 청바지에 돈을 쓰기가 아깝다. 그러다가 시간이 모두 가 버린다.
그런데 문제는 옷이 아니었다. 직장을 다닐 때는 매일 화장을 했고 거울을 보면 '잘 준비된 나'에 대해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는데, 이제는 아침에 첫째 셔틀버스를 놓칠세라 달려 나가며 선크림만 겨우 바른다. 거울을 볼 때마다 추레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에 한숨이 먼저 나왔다. ‘이러니 요즘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다고 하지. 자기는 점점 없어지고, 아이들만 남는 것 같으니.‘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자존감도 떨어졌다. 나는 지금보다 좀 더 예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나를 완전히 방치하고 있구나.
다음에는 미용실에 간다. 하지만 항상 ‘손질하기 쉽게’ 잘라달라고 하고, 집에서는 질끈 묶는다. 염색을 한다. 뿌리염색 시기를 놓쳐 결국 어두운 색으로 다시 염색한다. 다음에는 속눈썹 펌을 받는다. (당장 예쁘기는 연장이 예쁘지만, 좀 더 자주 샵에 가야 하므로 펌이 낫다.) 펌을 받은 당시에는 한 달 지나면서 속눈썹이 우수수 떨어진다. 다음은 네일아트를 받는다. 물에 손댈 일이 많아 2주를 채 못 가고 끄트머리가 떨어진다. 조금 더 용기를 내서 아이라인 문신도 해 본다. 화장하지 않아도 또렷한 눈매를 가지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만족스러울 만큼 티가 나지는 않는다. 아직 안 해본 일은 피부과 시술 정도인데, 사후 관리에 자신이 없어서 아직 발을 못 들여놓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두 아이를 기르는 친구가 머리를 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저 친구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머리도 예쁘게 잘 관리해서 길렀네. 대단하다’라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매우 놀랐다. 머리를 붙이는 것 (헤어 익스텐션)이라면 분위기도 맘먹고 바꿀 수 있고,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긴 생머리를 가져볼 기회도 되겠다 싶었다. 용기를 내서 그 친구에게 업체를 물어보았다. 그 친구가 오히려 깜짝 놀라며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응원해 주며 기꺼이 업체를 알려주었다. 두어 시간의 시술 후, 평생 가져본 적 없는 가슴 아래까지 오는 풍성한 생머리를 얻었다. 문제는 내가 너무 어색하고, 남편도 너무 어색해서 서로 말을 못 잇는다는 것. 나는 나대로 화장도 하지 않는 맨얼굴에 이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남편도 남편대로 가짜머리라는 인식 때문인지 자꾸 머리를 묶으라고 한다. 대체 왜 머리를 붙였나, 고뇌에 빠진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싱그럽기 짝이 없다.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당기지 않는 피부, 마르지 않는 붉은 입술, 화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이 난다. 아이들이 크는 만큼 나는 나이를 먹는다. 크고 작은 기미가 생기고, 피부색이 어두워지고, 잔주름이 생기고, 칙칙한 색과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는다. 그래서 이 글을 쓰면서 지금, 세수를 하고 마스크팩을 붙였다. 갈라져서 젤네일이 떨어져 버린 손톱에 리페어 탑코트도 발랐다. 첫째야, 너는 엄마가 마스크팩을 할 때마다 유령이라고 기겁하지만, 엄마는 단지 예뻐지고 싶은 것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