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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너의 속도를 존중할게

by 마루마루

첫째는 갓난아기 때부터 유난한 엄마 껌딱지였다. 등센서가 예민해서 내려놓으면 울고, 혼자 자다가 잠깐 깨도 울었기에 항상 품에 안고 자고 함께 누워있는 것이 일상이었다. 복직 후 첫째는 이모님과 함께 지냈는데, 이모님이 재워 침대에 눕혀놓으면 두 시간이고 혼자 낮잠을 자서 혼자 잘 수 있는 아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러나 깨어있는 긴 시간을 이모님과 보냈어도 일차 애착대상은 언제나 엄마인 나였다. 엄마가 있으면 아빠도 이모님도 모두 시큰둥했다. (이는 남편이나 이모님이 아이에게 못 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일을 하느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무거운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함께 있는 시간에는 만사 제쳐두고 아이에만 집중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엄마와 있는 것이 가장 재미있고 편안했을 것이다. 아이의 기질도 있겠지만, 아이가 내 품에서만 맴돌게 만든 것은 나다.


그렇게 첫째가 엄마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껌딱지 기질을 타고난 첫째에게 엄마하고만 놀 명분을 만들어준 것이다. '엄마랑 놀래' '엄마랑 할래' '엄마랑'은 다섯 살이 된 지금도 첫째의 단골 멘트이다. 놀이터에 가도 엄마와만 놀고, 엄마 주변을 맴돈다. 키즈카페를 가도 혼자서는 탐색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도 먼저 말을 못 걸고 (내가 중간에 중재를 해줘야 껴서 노는) 겉돈다. 새로운 것은 좋아하지만 불안이 높은 아이의 기질을 이해는 한다. 그런데 나도 힘들다. 비교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저 집 아이는 혼자서 미끄럼틀도 타고 풀밭에도 들어가는데 왜 우리 아이는 혼자서 못 할까' 하고 걱정의 탈을 쓴 비교를 한다. 일부러 아이를 떠밀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혼자 놀라고 재촉해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첫째는 놀이터 끄트머리에서 한 손은 내 바지를 잡고 한 손은 놀이터를 가리킨다. 엄마, 같이 들어가서 놀아요. 네?




그러던 첫째가 처음으로 놀이터에서 또래 사이에 껴서 노는 것을 봤다. 바로 사촌 오빠들과 함께 동네 놀이터에 갔을 때였다. 가족 행사로 모두 모여 놀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 놀이터에 나갔다. 얼마 전 나와 신나게 놀았던 곳인데, 주말이라 아이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오빠들이 모르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같이 모래놀이를 하자 오빠들 사이에 껴서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열심히 모래놀이를 하다가 혼자서 정글짐도 오르고 미끄럼틀도 한 번 탄다. 모래놀이터로 돌아갔다가 엄마가 어디 있나 한 번 확인한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니 다시 주저앉아 모래놀이에 집중한다.


가 봐서 익숙한 장소, 만나 봐서 잘 아는 사람, 엄마 아빠가 보이는 공간. 첫째에게는 이것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처음 가 보는 키즈카페, 잘 모르는 아이들, 시야가 가려진 공간. 아이에겐 이 공간과 상황이 얼마나 낯설까 싶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낯선 것은 두렵다. 어른이 되면서 두려운 것이 위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첫째는 조심성 있고 섬세하다. 그것을 아이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조심스럽고 섬세한 아이가 할 수 없는 일을 강요한 나를 반성한다. 그냥 두면 공간과 사람이 눈에 익고 나면 자기 속도로 적응해서 잘 놀 텐데,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한 나를 반성한다. 속도가 다른 것을, 네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네가 틀렸다고 한 것 같아 미안하다.


너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정말 미안해. 너의 속도를 존중할게. 세상은 생각보다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엄마 품을 떠나서 놀았을 때 처음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느끼는 그날이 네게도 올 거야. 너의 속도로, 네가 충분히 안전하다고 느끼는 너만의 세상을 발견하는 그날을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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