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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by 마루마루

나도 한때는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이었다.


힘들다고 투덜대도 일이 재밌었고 보람되고 공부하는 것이 즐거웠다. 전문의가 되고 학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고, 환자를 진료하며 생겼던 고민과 의문을 나눌 수 있고 선배들의 고견을 배울 수 있는 학회가 참 좋았다. 그래서 귀찮은 잡일도 기꺼이 했고, 학회마다 열심히 참석하고 배웠다. 학회 날은 공부도 하지만 뒤풀이 장소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아이를 낳고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런 '저녁 모임'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복직하고도 저녁 모임에 나가는 것은 항상 죄인 같았다. 아이는 엄마를 찾고, 아빠도 엄마를 찾는다. 그래도 첫째가 두 돌 지나고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빠에게 맡기고 (이전만큼 열심히는 못 가더라도)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육아휴직. 두 아이를 혼자서 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자진해서 사모임을 모두 차단했다. 남편도 사모임을 많이 차단했지만, 회사에서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필수의 기준이 다른 것 같지만) 회식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있었다.




둘째가 7개월이 넘은 무렵, 학회 일정이 다가왔다. 학회의 임원이기도 하고 (즉, 실무를 보는 사람), 발표도 있었기에 미리부터 남편과 이모님께 일정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발표 준비도 일찌감치 해두고, 일정을 조율하고 아이에게 설명도 했다. 엄마는 공부를 하러 가야 하니까 이 날은 이모랑 아빠랑 즐겁게 지내고 있으렴. 그럼에도 엄마 없이는 자려고 하지 않는 첫째가 마음에 밟혀 회식은 잠깐 앉아만 있다 오겠다고 약속했다. 출산하고 처음 있는, 공식적인 자리였다.


학회 당일, 이모님과 손을 바꾸고 바로 집에서 출발했다. 벌써 아침부터 시작한 학회의 반이 넘어갈 무렵 학회장에 도착했다. 무사히 발표를 마치고, 오랜만에 공부도 했다. 한참 강의를 듣고 있는데 이모님께 문자가 온다. 첫째가 많이 배고파하는데 간식은 이미 먹어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신다. 전화를 걸어 첫째를 바꿔달라고 한다. 엄마가 아직 공부하고 있어. 조금 있으면 밥 먹을 시간인데 00 이가 저녁에 먹고 싶은 게 뭘까? 엄마가 시켜놓을 테니 이모랑 아빠랑 식사 맛있게 하면 어때? 잘 있을 수 있지? 우리 딸 대견하네. 이따 저녁에 자기 전에 갈게. 통화를 끊고 학회장에 들어온다. 강의를 듣다 보니 육아에 찌들어 잊고 있던 환자들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올랐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 복직하면 이런 것들을 좀 적용해 봐야겠다. 더 공부해보고 싶은 것들도 늘었다. 학회가 끝날 무렵 집에 퇴근한 남편이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첫째가 조금 울고 있다. 엄마 언제 오느냐고 묻는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으니 아빠와 맛있는 치킨 먹고 엄마가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장난감으로 놀고 있자고 하니 그러겠다고 한다. 회식이 시작됐다.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 반가웠다. 대단한 이야기도 아닌데 재밌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남편과 아이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왔다. 아직 밥도 다 못 먹고 인사를 드려야 할 분들께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이만저만해서 인사드릴 분들께만 인사드리고 조금 있다가 나가겠다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부지런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약속 시간에서 1시간이 지났다. 분위기는 한참 무르익고 자리가 끝날 생각은 없다. 갈등이 생긴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늦게 갈까. 하지만 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약속을 지켜야지. 자리에 계신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회식 자리에서 나온다. 부지런히 택시에 탔는데 영상통화가 또 온다. 엄마 거기가 어디예요? 언제 집에 오세요? 빨리 오세요. 네네, 엄마 지금 가고 있어요.


8시 반까지 집에 오기로 했는데, 집에 들어오니 9시 반이 조금 넘었다. 짜증이 가득한 표정의 남편. 순간 나도 짜증이 팍 올라왔다. 자기 회식하면서 맛있는 것 먹고, 운동한다고 밤늦게 들어오는 동안 내가 혼자서 아이를 보는 건 당연하고, 내가 출산하고 처음으로 이렇게 나가서 어쩌다 보니 1시간 늦은 게 이렇게 짜증 낼 일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오늘 못 들어온다고 못 박고 그냥 나가서 자고 올 걸 그랬네. 하지만 약속을 못 지킨 것은 나의 잘못이니 (지킬 수 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이때 알았다) 군말 없이 아이들을 챙겨 침실로 들어간다. 진작에 잠들었어야 할 아이들은 눈을 비비고 하품을 한다. 책 두 권을 읽고 첫째는 30초 만에 잠에 들었다. 이 간단한 과정을 왜 아빠랑은 할 수 없을까.




일과 가정의 양립. 말은 쉽다. 나라에서도 회사에서도 지원을 많이 해 준다. 하지만 양립이 정말 '양립'이냐고 묻는다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 아주 가느다란 실을 걸어두고 하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보다 더한 외줄 타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것 같다.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아이들을 케어하고 집을 돌보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다. 어느 시점에는 '여기까지가 내 역할'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항상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시험당하는 기분이다.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조금만 더 하면 이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 약간의, 사소한 기대들은 양쪽 끝을 겨우 연결한 실을 더 가늘게 만든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 나도 아이가 없었다면, 아니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면 일에서 이런 패배감을 느끼진 않았을 텐데. 또, 많은 엄마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을 그만두는 이유도 알 것 같은 기분. 그깟 일이 뭐라고, 소중한 아이들과 가정을 이렇게 방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엄마의 마음은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오락가락하며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고 있다. 그 사이에서 엄마의 건강이, 욕구가 희생된다. 잠을 줄이고 운동할 시간을 줄이고 식사할 시간을 줄인다. 그렇게 된다.


내가 다시 돌아갈 일터와, 일이 나에게 줄 영향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나 역시 정답은 없다. 원래 이 문제는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각자의 타협안을 찾아야 할 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타협안을 찾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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