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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엄마의 일탈

by 마루마루

[일탈 (逸脫):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아이는 데려갈 수 없는 곳.




둘째를 출산한 후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해도 항상 첫째 혹은 둘째, 또는 둘 다와 함께였다. 이모님께 둘째를 맡기고 요가 수업도 가고, 혼자 장도 보고, 카페에도 가지만 길어야 한 두 시간이다. 이렇게 멀리,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시도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육아휴직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육아휴직은 아이를 기르기 위해 나라와 직장에서 허락해 준 특별한 휴직 기간이다. 아이를 기르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같이 갈 수 없는 그곳에 꼭 가고 싶다. 그렇게 해도 될까?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도 아니고 돌봐주실 분께 잠깐 맡기는 것이니 우선순위를 저버렸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머리를 감싸고돈다.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이럴 때는 먼저 행동해야 한다. 첫째 유치원에 일일종일반을 신청한다. 종일반에서 놀고 싶어 한 첫째는 오히려 반가워한다. 둘째를 봐주시는 이모님께 말씀드린다. 이모님은 나의 용기를 칭찬하며 어서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 주신다.


가기 전에 미리 청소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고 저녁 식사도 만들어둔다. 총 네 시간 반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동하는 데 왕복 두 시간, 그리고 거기서 쓸 수 있는 시간이 두 시간 반이다.


운전해서 가면 더 빠를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대중교통을 타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지하철에 탔다. 평일 낮임에도 사람이 많다. 다들 어디를 그렇게 가는 걸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못 다 읽은 책을 꺼낸다. 한 번 갈아타고 목적지에 내린다. 상업지구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화가 들린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이, 지긋이 나이가 든 어르신, 아이들을 다 키우고 여유를 즐기는 듯한 중년의 여성들, 일하다 중간에 잠깐 나온 듯한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들. 유모차는 들어갈 수 없고, 시끄럽게 해서도 안 되는 그 공간에 아이들은 없고, 나처럼 아이가 어릴 법한 엄마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잠깐 엄마라는 옷을 벗고 내가 좋아했던 일에 푹 빠진다. 그러게. 이런 일들을 참 좋아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일정이 끝났다. 집에 가기엔 좀 이르고, 무언가를 하기엔 조금 모자란 시간. 인근의 분위기 좋은 카페를 검색한다. 테라스 자리에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주문한다. 아이들과 남편 간식을 좀 사가야 하나 둘러보고 검색도 해보지만 마땅한 아이템이 없다. 조바심이 난다. 잠깐 엄마를 벗은 줄 알았는데 또 엄마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뭐 안 사가도 되잖아. 집에 먹을 것 많고, 시켜 먹을 맛집도 많은걸. 그냥 여기서 이런 시간을 즐겨. 내 안의 내가 말한다. 그제야 스마트폰 화면을 닫는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종일반에 첫째를 데리러 간다. 피곤했는지 잠깐 잠들었다고 한다. 선잠이 깨서 엉엉 우는 소리가 종일반 밖까지 들린다.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다섯 시간 만에 둘째도 만난다. 이모님을 댁으로 보내드린다. 하루종일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다. 하지만 어딘가 알을 깬 느낌이다.


다음 일탈은 언제,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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