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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너는 겨우 48개월이다 (f. 엄마에게 연휴란)

by 마루마루

어린이날 선물을 두 개나 받은 첫째는 매우 신이 났다. 동시에 하루종일 쌓인 피로에 눈이 반쯤 감겨있다. 한참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선물을 뜯어달라고 한다.


"이제 곧 저녁 시간이니까 여기까지 뜯고 나머지는 저녁 먹고 하자"

"네, 엄마."


5분 후.

"엄마 소꿉놀이도 뜯어줘요."

"방금 저녁 먹고 뜯자고 하기로 했잖아. 너도 그러겠다고 했으면서 왜 이제 와서 딴소리야. 그건 안 돼. 약속 지켜."

"아니, 유치원놀이 (첫 번째 선물)에 스티커가 잘 안 붙여진단 말이에요! (짜증)"

"그러면 엄마가 스티커를 붙여주고 나머지 저녁 준비를 할게. 소꿉놀이는 저녁 먹고 뜯자."

"그래요."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주방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둘째가 느지막이 낮잠에서 깬다. 저녁 이유식을 먹여야 한다. 이유식을 데워 둘째를 아기의자에 앉힌다. 막내 어르신은 느긋하게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40분 정도 걸린다. 시계를 보니 벌써 8시가 다 되어 간다. 첫째도 빨리 재워야 하고 아직 남은 집안일도 있어 마음이 급하다.


첫째가 다시 나를 찾아온다.


"엄마 아까 고쳐달라고 한 거 왜 안 고쳤어요!" (짜증 섞인 말투)

"고쳐서 네 책상 위에 뒀잖아. 가서 봐 봐!"

"(잠깐 보고 와서) 거기 없단 말이에욧!"

"(정색을 하고) 야, 거기 뽀로로 위에 있잖아!!"


다시 쪼로로 가서 보더니 찾는다. 나는 그새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정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 아빠를 붙잡고 엉엉 우는 소리.


"무슨 일이야?"

"(남편) 이 장난감에 딸려 온 책이 없다고 찾아달라고 하는데 찾아도 어딨는지 모르겠네?"

"(첫째) 내가 여기서 조금 봤는데, 지금은 못 찾겠어요. 찾아줘요."


같이 책장을 살펴본다.


"자 여기 보면 그 책은 아니고 비슷한 이 책이 있네. 이것 본 거지?"

"아니에요!"

"그러면 네가 찾는 건 여기 없어. 지금은 못 찾겠다."

"(대성통곡) 찾아줘요. 엉엉 엉엉"

"(정색을 하고) 야! 네가 보고 아무 데나 두고 나보고 찾아달라고 하면 어떡해. 나도 몰라."


말을 하고 나니 첫째에게 미안하다. 다른 책장에 가서 뒤지다가 그 책을 찾아서 준다. 남편이 넌지시 한 마디 한다.


"여보, 첫째에게 좀 친절하게 해 줘."


첫째는 매우 졸리다. 눈이 반쯤 감겼지만, 새 장난감으로 놀고 싶다. 그런데 마음대로 잘 안 되니 짜증이 난다. 계속 나를 쫓아다닌다.


"엄마랑 새로 산 소꿉놀이 하고 싶은데."

"엄마 이게 안 돼요."

"엄마 언제 앉을 거예요?"

"엄마, 동생 좀 치워줘요. 내 장난감 다 망가뜨려요."


"너 너무 졸린 것 같은데. 이제 자자. 10분 있다가 잔다."


"싫어. 으앙 (대성통곡)"




나는 친절한 편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남편 말대로 왠지 짜증을 많이 내고 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피곤하고 졸리면 짜증이 나고 참을성이 줄어든다. 어른들은 그럴 때 쉬면 되는 걸 아는데 아이들은 그 감각을 잘 모른다. 갓난아기들도 피곤하면 (낮잠 시간이 되면) 눈을 비비고 귀를 쥐어뜯고 자꾸 안아달라고 하고 금방 울지만 그게 졸림의 신호인지를 항상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아이에게 친절하고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려면 그만큼 에너지가 필요하다. 돌이켜보니 나도 피곤하다. 어린이날이 낀 연휴를 보내면서 에너지를 모두 소진했다. (엄마들은 주말, 연휴, 방학에 에너지를 소진하고 평일에 에너지를 쌓는다) 그러는 동안 친절을 베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 버렸다.


게다가 아무리 친절한 사람도 특별히 에너지가 더 필요한 순간이 있다. 아이가 같은 요구를 반복하거나 여러 번 설명해도 듣지 않고 떼를 쓰고 있다면 ‘자기 맘대로 되지 않아 속상하구나’ 하고 공감하고 친절하게 응대하기 위해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고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몸이 피곤하고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면 호흡을 가다듬기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엄마 힘든데 네가 좀 알아서 해 줘라, 응?' 하는 마음이 숨어있는 것 같다. 미안하다. 너는 이제 겨우 48개월인데, 나는 네가 마치 스무 살이 넘은 어른인 양 대했던 것 같다.




엄마가 연휴 내내 너희 둘을 보느라 참 힘들었단다. 아빠가 연휴 중 이틀을 출근했기에 너희를 혼자 돌봐야 했지. 너는 계속 ‘엄마 옆에 와서 놀아요’ 하며 나를 찾았고 네 동생은 옆에서 너의 작은 장난감들을 입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노리느라 엄마는 곤두서있었단다. 게다가 동생은 코가 막혀서 두 시간마다 깨서 울었던 것 너는 기억 안 날 거야. 날씨가 좋지 않아 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쇼핑몰이나 백화점은 어딜 가도 사람이 많아 엄두도 못 나서 집에서 노느라 너희도 힘들었을 거야. 밥은 아빠가 해줬지만 설거지와 뒷정리는 엄마 몫이었고. 네가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빨리 와서 놀자고 재촉해서 엄마 마음이 조급했단다. 먹고 나면 더러워지는 너희들 옷이 너무 많이 쌓여 빨래를 두 번이나 돌렸어. 이 정도면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 물론 네가 나의 힘듦을 굳이 이해해 줄 필요는 없단다. 그냥 그렇다는 거야. (물론 이건 속으로만 말했다.)


연휴 잘 살아남았다. 정말 수고했다. 내일은 둘째 낮잠 재우고 맛있는 커피를 사 마시자. 생각만 해도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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