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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내리사랑과 치사랑

by 마루마루

[내리사랑: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함. 또는 그런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치사랑: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 또는 그런 사랑.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예문

•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내리사랑에 비해서 부모를 위하는 치사랑은 너무도 허약하다. (출처: 고려대 한국어사전)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고 엄마를 존경하며 사랑하지만,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종류의 사랑은 아니다. 그런 사랑은 연인 사이에서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서 그런 사랑이 부모 자녀 사이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리고 설레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어른들이 ‘아기를 보기만 해도 배부르겠다’고 했던 말이 이해되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은 이어진다. 뭘 할 때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아이가 없어도 장난감을 구경하며 ‘이걸 좋아할까?’ 고민한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이렇게 놀면 어떨까?’ 끝없이 고민하고 함께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물론 현실은 대부분 상상과 다르며 괴로울 때도 많다.) 나를 위해 뭘 사겠다고 나갔다가도 아이들 것을 먼저 사고 나면 정작 내 것은 볼 시간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룬다. 나는 어른이라 몸이 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충분히 누리고 가졌지만, 아이들은 점점 커가니 계속 새로운 것이 필요하고 경험하고 배울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나의 욕구는 뒷전이 된다. 때로는 그게 짜증 날 때도 있지만, 잠깐의 휴식과 여유만 주어지면 그런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진다. (이 균형은 언제나 잡기가 매우 어렵다.)


어린이날이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을 사 주며, 너희는 귀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라고 말한다. 어버이날이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달한다. 부모와 자식, 모두 소중하지만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공간의 크기나 무게감은 다르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독립된 존재였으며 스스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고, 자녀인 나 외의 ‘세상’도 존재했다. 한편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사춘기를 겪고 성인이 되어 결국은 독립하겠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이 된다는 것은 매우 무겁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하는 말과 행동이 이들에게 세상의 모습이다. 나의 습관, 눈빛, 사소한 손짓 하나도 이들에게는 따라 할 거리가 된다. 아이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부모로부터 배운다. 나에게 옳은 부모이기 때문에, 부모가 하는 행동은 모두 '옳다.'


내리사랑을 국어사전으로 검색해 보니 예문에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속담이 나온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내 생각에,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향한 사랑이 작거나 어렵다,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을 향한 사랑이 무한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 이 둘은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 듯하다. 내리사랑은 책임감과 의무의 옷을 입은, 무겁고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다. 치사랑은 의무와 책임과는 다소 먼, 감정의 흐름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러면서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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