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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육아휴직이 끝난다고 육아가 끝나는 건 아니니까

by 마루마루

아기의 울음에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반응할 때가 있었다. 아이의 요구를 즉각 파악하고 만족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출생부터 약 18개월까지는 세상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는 시기이므로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무조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느낌이 온다. 즉각적인 만족을 미루거나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아무리 원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하며, 자신의 요구를 명확하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익혀야 한다. 돌이켜보면 첫째 때 그걸 잘 못했다. 나는 일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유난히 컸다. 그래서 퇴근하면 항상 모든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데 집중했다. 나를 뒷전으로 미룰수록 아이를 향한 집착은 커져만 갔고, 왜곡된 사랑을 먹고 자란 아이는 고집쟁이와 응석받이가 되었다. 첫째는 불편한 상황을 '울음'만으로 해결하려 하고,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남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성향이 크다. 타고난 성격도 있겠지만, 어떤 부분은 나의 '목맨 육아'로 인해 강화된 것 같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 이를 테면 뭔가를 원하는 것 같을 때 주변에서 눈치껏 알아서 해 주거나,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대신 해줬던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




두 번째 육아휴직은 갓 태어난 둘째를 최선을 다해 돌보기 위해 필요했지만, 동시에 첫째와의 관계에서 꼬여버린 실타래를 조금이라도 풀어보기 위해 절실하게 필요했다. 둘째를 임신하기 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이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일을 그만둘게'였는데, 그 말 속에는 바로 아이와의 관계를 더 늦기 전에 바로잡고 싶다는 욕구가 숨어있었다. 기적같이 찾아온 둘째 덕에 나는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훈육은 갈팡질팡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니 첫째가 너무 안쓰러운 것이다. 알면서도 눈감아주는 일이 자꾸 생겼다. 그럴 때면 제대로 훈육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화살은 '제 나이에 맞게 행동하지 못한다'는 화살촉을 입고 첫째에게 향했다. 아이의 못난 면은 모두 내가 워킹맘이어서 제대로 훈육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면 나는 갑자기 매우 무섭고 잔소리 많은 엄마로 돌변했다. 목소리에 감정이 실린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네가?'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과 의사라고 어찌 항상 평정심으로 살겠는가. 차라리 여기가 진료실이라면 조금 더 가다듬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할 수 있을 텐데, 현실 육아는 여기저기 심어놓은지도 모르는 지뢰가 뻥뻥 터지는 최전방이다.


이러다 보니 육아의 일관성이 떨어졌다. 엄하게 혼내고 나면 아이가 안쓰러워서 과도하게 허용적이게 되니 아이 입장에서는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소리인지 헷갈렸을 것이다. 식탁에서 스스로 밥을 먹는 것을 가르칠 때, 어떤 날은 아이가 피곤해 보이고 안쓰러워서 한 숟갈씩 떠서 먹이고 어떤 날은 '너 스스로 먹어. 엄마 아빠는 다 먹으면 일어날 거야'라고 말했다. 이를 닦을 때, 어떤 날은 엄마가 닦아줄게 하고 어떤 날은 '네가 스스로 닦고 나와'라고 말하고 나가버렸다. 아이는 아마 엄청 헷갈렸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육아휴직에 내가 조급해진 모양이다. 아이에게 부족한 점은 여전히 많아 보이고, 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모든 것을 '육아휴직 내에,' 단박에 해결하고 싶은 욕심 많은 엄마다.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잔소리를 해야겠다. 일단 저녁 식사 시간에 앉아서 밥 스스로 먹는 것부터, 그것 하는 동안은 이는 닦여주고 유치원 가방도 챙겨주자. 그다음은 유치원 가방 스스로 칭기는 것, 스스로 이 닦기, 신발 정리하기, 하나씩 하다 보면 언젠가 할 수 있게 되겠지. 욕심부리지 말고, 한 번에 하나씩.


육아휴직이 끝난다고 육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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