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만 사랑해요
첫째는 사랑 그릇이 크다. (이 표현은 유치원 선생님께 빌려왔다.) 인정 욕구, 독점욕, 승부욕이 모두 강한 게 모두 나를 쏙 닮았다. 그래서 첫째의 마음이 더 이해가 되고, 그래서 가끔은 더 속상하다.
첫째의 유치원 등원거부 시기에 종종 해줬던 말이 있다.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네가 유치원에 있던, 엄마와 함께 있던, 엄마는 너를 사랑해. 네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던, 유치원에서 신나게 노느라 엄마를 잠시 깜빡했던,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네가 엄마가 밉다고 해도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어느 날 첫째가 이렇게 묻는다.
’엄마, 내가 나쁘게 해도 나를 사랑해요?‘
‘엄마, 나를 사랑해요?’ ‘동생은 안 사랑해요?’
’엄마, 나를 사랑하고 동생은 조금 사랑해요?‘
‘엄마, 나는 엄마를 백 개 사랑하는데 엄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해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큰 숫자가 100일 때)
여전히 첫째는 둘째와 사이가 좋다. 하지만 첫째는 동생과 엄마를 나눌 생각은 1도 없는 듯하다. 엄마 안에서 자신이 1번이길 간절히 바라는 것 같다.
문득 나의 옛날을 생각해본다. 나와 남동생은 두 살 터울이다. 나는 남동생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지금껏 우리 남매는 사이가 크게 나빴던 적이 없었고 여전히 괜찮다. 그런 나도 엄마에게 저렇게 물어봤을까? 엄마는 너무 옛날 이야기라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저 ‘너는 할머니 방에 아침부터 들어가 자기 전까지 있었다’고만 말씀하신다.
어쩌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첫 번째 소원은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 아닐까? 누군가와 나누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차지하는 것. 그 소원은 결국 이뤄지지 않는다. 엄마의 사랑을 동생과, 엄마의 직장과, 아빠와, 혹은 다른 대상과 나눠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인생 첫 번째 좌절이 아닐까.
첫째는 그 좌절의 골을 지나고 있다. 어차피 인생에서 한 번은 맛봐야 하는 좌절이라고는 해도, 어떻게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지가 앞으로 아이가 좌절 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표본이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길이 있다고 기억되는 일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