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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두 번째 돌잔치

by 마루마루

언제 해도 낯설고, 다시 해도 어려운 일들이 있다. 살면서 대부분 한 번 정도 하는 일들이다. 예를 들면 백일잔치, 돌잔치다.


결혼식을 하려면 '스드메'를 해야 하듯, 돌잔치에도 기본 구성이 있다. 직계가족끼리, 아무리 소규모로 한다고 해도 최소한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장소를 마련해야 하고, 모임의 목적인 돌잡이는 해야 하고, 기념사진은 찍어야 하고, 그냥 가기 아쉬우니까 식사도 하고, 돌반지도 받았으니 답례품도 드려야 한다. 물론 아예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의 백일이 그랬다. 이사 일정 때문에 한 달 정도 시댁 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둘째의 백일이 딱 겹쳤다. 굳이 해야 하나 싶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둘째의 삶에서 단 한 번 밖에 없는 100일을 이렇게 넘어가는 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놈의 '단 한 번 밖에 없는'이라는 멘트는 언제나 마음을 약하게 한다.) 급하게 백일떡을 주문하고 돌상을 빌려 시댁에 차렸다. 한복 입는 동생을 부러워하는 첫째를 위한 한복도 준비해야 했고, 모처럼 방문한 친정 부모님까지 다 같이 식사를 할 장소도 예약해야 했다. 그렇게 얼레벌레 백일을 치르고 나니 시간이 흘러 벌써 아이가 6개월이 되었다.


’ 돌잔치를 안 할 수는 없잖아.‘


여건이 안 되면 안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돌잔치라는 게 돌잔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양가 부모님은 이럴 때 한 번 서로를 만난다. 어린 사촌들끼리도 만나서 놀 수 있는 시간이다. 여러 고민 끝에, 어차피 소규모로 하는 돌잔치니 우리끼리 오붓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런 요구를 맞출 만한 장소를 발견했다.




장소를 예약하고 한참이 흘렀다. 드레스 예약해야 하는데, 떡 주문해야 하는데, 뭐 해야 하는데, 하는 일들은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지만 움직이기가 귀찮았다. 왜 그렇게 귀찮고 싫었을까. 준비하려고 찾아보다 보면 더 좋은 것 (대부분 더 비싸다)을 알게 되고, 점점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선택에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는 것이 싫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대동소이한데도, 그때는 왜 그렇게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지) 차라리 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안에서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행히 그렇게 해서 대부분의 준비할 수 있었지만, 사진사만큼은 알아본 분들이 거의 다 예약이 잡혀서 거의 열 번째 컨택한 분과 찍게 되었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돌잔치 당일. 아침 일찍 집으로 메이크업 선생님이 오셨다. 메이크업 선생님의 차에 주차금지 딱지가 붙어 있어서 당황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너무 화를 많이 내셔서) 메이크업을 마치자마자 첫째 먼저 드레스로 갈아입혔는데, 드레스에 떡하니 핀이 꽂혀 있어서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항의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아이들 간식을 잔뜩 챙겨서 출발했다. 가는 길에 떡을 픽업했는데, 떡이 시간 맞춰 준비가 안 되어 기다렸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현장에서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 옷을 갈아입히고, 사진사 선생님과 미팅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땀이 많이 나고, 아이가 울고, 원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아 여러 번 재촬영을 해야 했으며, 시간이 늦어져서 손님들을 배고프게 했다.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고, 돌잡이를 했다. 자신도 돌잡이를 하게 해달라고 삐진 첫째를 달래야 했고, 결국 돌잡이를 두 번이나 했다. (참고로 둘째는 5만원 권을, 첫째는 (설명을 다 듣고) 연필을 집었다. 이유를 물으니 공부를 잘 하고 싶단다)행사를 마치고 못다 한 촬영을 마친 다음에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잊은 물건이 없는지 잘 챙겨서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시간이었다.


결혼식 하고 똑같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마치고 나면 ‘또 하나의 숙제를 마친’ 느낌에 홀가분하고, 어딘지 모르게 떳떳해지며, 삶을 다루는 스킬이 업그레이드된 것을 느끼게 된다. 돌잔치는 돌을 맞이한 둘째를 축하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하나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어떤 규모로, 누구를 초대해서, 어디서, 무엇을 먹으며, 어떤 선물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나고, 어떻게 행사를 치러내는지에서 엄마의 내공이 드러난다. 이제와 돌이켜보니, 그런 시험을 보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더 준비하기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단지 돌잔치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엄마(부모)를 투영한다.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이를 통해 엄마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아이가 입는 옷, 먹는 음식, 가는 곳,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결국 부모의 취향이자 부모의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반영된 결과물이다. 그중 돌잔치는 이런 것이 사람들 앞에 드러나는 일이자, 오래오래 기억과 사진으로 남는 중요한 행사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엄마들이 돌잔치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하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첫째의 백일잔치는 코로나로 집에서 조촐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음에도,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하고 전날은 과일이며 꽃을 사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첫째의 돌잔치 역시 코로나로 양가 부모님만 모시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름 신중하게 고른 것들의 모음이었다. 둘째의 백일잔치와 돌잔치는 첫째 때에 비하면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준비했다. 아마 첫째의 경험을 통해 ‘미리, 오래 준비한다고 아웃풋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나의 성향을 꿰뚫어 본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째와 둘째 모두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한 것은 다름 아닌 한복과 성장동영상이었다. 두 아이의 돌한복을 손바느질로 만들었다. 첫째는 색동저고리를, 둘째는 (색동저고리를 초월하는 품이 드는) 철릭한복을 만들었다. 내가 주체가 되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한 것이다.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었다. 남이 해 주는 것에 편안하고 감사하지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은 사람.


더 이상 돌잔치를 할 일은 없겠지만, 앞으로 아이들과 살아가는 삶에서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드러날까. 아이들의 성장도 기대되지만, 나라는 사람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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