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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육아휴직 중입니다.

돌아갈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

by 마루마루

두 번째 휴직은 1년 3개월을 신청했다. 유난히 덥고 긴 여름을 지나면서, 남은 휴직 기간도 점점 짧아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는 질문은 대개 휴직에 대한 것이었다.


'얼른 돌아가고 싶어?'

'애를 둘이나 놓고 돌아가려니 마음이 힘들진 않니?'

'이제 곧 휴직이 끝나네? 마음이 어때?'


마음은 움직인다. 어떤 날은 빨리 돌아가고 싶었고, 어떤 날은 영영 사표를 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55:45 정도의 비율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아이들을 보내고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아 있으면, 그 평온함과 고즈넉함에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주말에 두 아이가 온 집안을 헤집고 난리법석을 쳐도 너그럽게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이유도, 그 고즈넉함 덕분이었다. 그 느낌을 당분간 다시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직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 중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그 시간의 질이 좋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조금만 기다려' '이따 해 줄게' '엄마 이것만 하고'를 달고 사는 나의 육아의 질이 그리 좋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뭔가 잘못되는 것 같으면 조바심이 나는 성격 탓에, 아이가 어딘가 힘들어하면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해결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것이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내 불안에 못 이기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안 보고 있으면, 그 사이에 아이는 자기만의 해결책을 찾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울 것이다. 그러려면 적절한 거리가 필요했다. 웬만한 것은 자율에 맡기고, 꼭 필요할 때는 도울 수 있는 거리와 지혜.


그리고 나는 병원을 그리워했다. 잠깐씩 수다 떨 수 있는 직장 동료, 따뜻한 햇살 아래 홀로 하는 산책, 병동의 냄새와 분위기, 항상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환자분들까지.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하고 사직서를 썼다 찢었다 했지만, 그것은 일이 싫어서가 아니라 일과 육아의 병행이 너무 버거워서였다. 첫째만 있을 때는 그야말로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서야 완벽한 엄마가 될 수도 없고 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모든 것을 채워줄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이들의 세상은 나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니까.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 많은 세상으로 채워질 것이고 나의 존재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나의 세상 역시 아이들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나에게도 나만의 세상이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몇 번을 돌이켜봐도 운이 참 좋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마음껏 쉬게 해 준 덕에, 재취업의 걱정 없이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혹자는 '그래서 네가 병원에 매일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지만, 첫째를 낳았을 당시의 나에게, 그리고 둘째를 낳은 지금의 나에게도 그것이 꼭 필요했다. 재취업에 전전긍긍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과 관련 없는 책도 실컷 읽었고 미래를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었다.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기 때문에 마음껏 방황했고, 방황이 두렵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그것이 육아휴직이 갖는 막강한 힘인 것 같다.


누구나에게나 이 기회가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데, 한국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엄마들이 출산과 동시에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무기한 휴직에 들어간다. 엄마도 한때는 멋진 커리어우먼이었고, 일에서 성과를 내고 싶은 열정이 있었는데, 출산과 육아는 그런 소망을 온데간데 사라지게 한다. 그만큼 호르몬이 강력하기도 하지만 그걸 해내기가 어려운 현실의 벽에 타협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들이 복직을 하면 대부분 아침에는 등원 도우미를 써야 하고 오후에는 하원 도우미를 써야 한다. 그만큼 일찍 출근해야 하고 그만큼 늦게 퇴근한다는 뜻이다. 도우미를 쓰고 반찬을 시켜 먹느라 월급은 통장에 머무를 새가 없다. 그러면서도 직장에서는 눈치를 봐야 하고, 행여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있는 연차 없는 연차 모두 끌어다 써야 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모든 엄마들이 엄마로 존재하며 동시에 '내가 원하는 모습의 나'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반드시 직장이 아니어도, '나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돌아갈 곳이 있기를, 그래서 엄마이자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마땅한 자유와 지혜로운 방황의 시간이 반드시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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