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을 견디는 힘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등원하게 되면서, 나는 전에 없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어린이집 근처의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둘째를 기다리고, 나중에는 요가에 가거나 집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든지 아플 수 있다. 특히 기관에 다니면, 내가 조심하는 것과 상관없이 아프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수족구병을 앓았다. 갑자기 고열이 났고, 다음 날 오전부터 손바닥과 발바닥을 수포가 가득 메웠으며, 그다음 날부터는 목이 아파서 밥을 못 먹기 시작했다. 수족구병 자체는 첫째 때도 겪은 일이라 놀랍지 않았으나, 돌이 되지 않은 둘째가 수족구로 고생하는 것은 안쓰러웠다.
하지만 안쓰러운 것만큼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시간이 사라진 것이었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았어도, 아이가 등원해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나만의 루틴이 있었다. 아이가 아파서 케어하느라 루틴이 무너진 것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아이들은 언제든 아플 수 있고, 아프면 집에서 쉬어야 하며, 쉬는 동안 보호자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시기를 내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했다. 스스로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한숨을 쉬거나, 엉뚱한 데 화를 풀기도 했다. 머리로는 ‘내 시간이 없어져서 그런 것‘임을 이해했지만, 마음은 따라오지 못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불확실성 안에 온몸을 내던지는 것과 같다. 의학적으로 뱃속의 태아는 이물질(foreign body)이다. 나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내 맘대로 만들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 아기가 태어나면 훨씬 많은 것이 불확실해진다. 부모로서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기질, 나 외의 양육자의 행동과 말, 외적인 상황 (예를 들면 코로나 사태, 경제 불황)는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영향을 준다. 아이가 기관에 가면 거의 대부분의 일이 불확실해진다.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노는지,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먹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어도, 품에 끼고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내 소관이 아니요’ 하며 내려놓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 새끼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역이 생긴다. 단지 발달만의 일이 아니다. 갑자기 다치기도 하고, 갑자기 아프기도 하며, 갑자기 ‘절대 그런 일만큼은 없었으면’ 하는 사건에 휘말리기도 한다. 모든 것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부모가 되었는데, 당장 눈앞의 일들을 해치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쓰는 것이 부모의 현실이다. 부모가 되는 것은 매일매일, 매 순간 매 초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계속 내던져지는 일로, 마음의 에너지를 매우 많이 소진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렇게 소진되는 에너지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겨우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싶으면 다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불확실성의 불구덩이에 던짐을 당하고, 겨우 기어 나오면 다시 그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매일을 살아나간다.
그럼에도 두 가지 정도 다행인 것이 있다. 첫 번째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은 마치 근육 같아서 반복해서 단련할수록 단련된다는 것이다. 이때 단련된다는 것은 어떤 불확실성 안에서도 의연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성 안에서 동요하고 흔들리는 시간이 예전보다 짧아지고, 지금 쓸 수 있는 자원 중 무엇을 동원할지 판단이 빨라지며, 좀 더 다양한 자원에 마음을 열고 유연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상황이 불확실해져서 불안하구나‘를 알아차리고 불안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아내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용기를 내서 도와달라고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는 그 안에서 얻는 찰나의 평온함을 온몸으로 만끽하는 재주가 생긴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항상 나쁜 쪽으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아이들의 긴 낮잠으로, 때로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일을 해내면서 생기는 여유로, 때로는 갑작스러운 선물로 불확실성이 찾아온다. 이때를 놓치지 않는 재주가 생기고, 그렇게 충전한 에너지를 적당히 배분하는 지혜가 생긴다.
점점 더 많은 것이 빠르게 변하고 불확실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부모로 산다는 것은 이토록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남는 기술을 훈련하는 하나의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