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가기 싫어 병>을 고친 이야기
유치원에 입학하고 3주 차에 <유치원 가기 싫어 병>이 처음 찾아왔다. 이는 새로운 기관과 선생님, 친구들에 대한 적응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고, 새 선생님과 타협점을 찾으며 2주 만에 회복되었다. 그리고 유치원이 너무 재밌다며 잘 다니던 어느 날, 갑자기 <유치원 가기 싫어> 병이 재발했다.
유치원에 입학한 지 벌써 세 달이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영어가 싫어'였다. 하지만 잘 들어보니 영어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누가 괴롭히고, 유치원이 무섭고, 그냥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이유는 뭐든지 등장했다. 그러다가 일관된 주제 하나로 수렴이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랑 놀고 싶어서'였다.
2주 만에 가라앉은 지난번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한 달이 넘게 아침마다 울었다. 아침에 셔틀 앞에서 엉엉 울다가 타서, 셔틀이 올 때까지 업어주며 달래서 보냈다. 복직이 한참 남기는 했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혼을 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 보기도 하고, 여러 방법으로 회유해보기도 해도 일관되게 '엄마랑 놀고 싶어서'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울었으며, 가끔은 자기도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데 잘 안 되어 속상해하기도 했다.
아이와 <유치원이 도망갔어요>라는 책을 읽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을 소중히 다루지 않아 유치원이 가출했는데, 그 길에서 곤경에 처하자 아이들이 유치원을 구해주는 이야기이다. 어느 밤,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각색해서 들려주었다.
옛날옛날, 딸기(가명- 실제로는 아이의 이름을 넣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딸기와 엄마는 침대에 누웠어요.
딸기가 이야기했어요.
“엄마, 내일 유치원에 가기 싫어요.”
“유치원에 왜 가기 싫어?”
“…”
딸기는 반대편 벽을 향해 몸을 돌려 토끼를 꼭 껴안았어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엄마가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이야기했어요.
“딸기야, 그런데 딸기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는 말을 계속해서 유치원이 딸기가 싫어진 것 같은데 어떡하지?”
딸기는 엄마를 힐끔 쳐다봤어요.
지금까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처음이거든요.
딸기는 키득키득 웃으며 대답했어요.
“엄마, 유치원이 눈이랑 코랑 입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해요?”
그러자 엄마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딸기난 유치원 눈이랑 코랑 입 본 적 있어? 엄마는 본 적 있어.”
뭐라고요? 나도 본 적 없는 유치원 눈이랑 코랑 입을 엄마가 본 적 있다고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진 딸기는 엄마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엄마는 계속 이야기했어요.
“유치원은 딸기를 되게 좋아하는데, 딸기가 자꾸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하니까 되게 속상했나 봐. 그래서 유치원이 딸기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대. 딸기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면 어떡하지? 지난번에 읽은 책에서 유치원 친구들이 유치원에게 함부로 했더니 유치원이 도망가 버렸잖아. 그렇게 유치원이 가버리면 어떡하지?”
첫째는 이 시점에서 몸을 벽 쪽으로 돌렸다. 뭐 하나 싶어 잠깐 기다렸더니, 어깨가 들썩이며 흑흑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딸은 유치원이 싫은 게 아닌 것이다.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딸기야, 유치원은 진짜로 너를 좋아해. 너랑 함께 노는 시간이 정말 즐겁대. 그런데 딸기가 맨날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나 봐. 내일은 유치원에 가서 ‘나도 너와 노는 게 좋아’라고 말해줄 수 있겠니?”
첫째는 품에 안긴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아침, 어제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는지 물었더니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러더니 "엄마, 그 이야기는 너무 슬퍼요. 이제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무렵부터 아이가 아침마다 우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고, 나중에는 먼저 가방 메고 셔틀을 기다릴 정도로 좋아졌다. 이 모든 과정에 대략 2달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정말 기억하나 싶어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았다. 그랬더니 단호하게 "엄마, 그 이야기는 너무 슬프니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다시 말했다.
아이의 <유치원 가기 싫어 병>은 이렇게 나았다. 이 이야기만으로 나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치원에 아직 덜 적응한 것, 어린 동생처럼 종일 엄마와 있고 싶은 마음, 엄마가 곧 회사로 돌아가버리면 놀 시간이 부족해질까 봐 걱정되는 마음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유치원 가기 싫어 병>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유치원에 적응하고 재밌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고, 엄마도 낮에 집에만 있을 뿐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동생도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하면서 어쩌면 울 명분이 점점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울고 업히기 시작하니까 자꾸 그렇게 하게 되고, 어떻게 이걸 멈춰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그 타이밍에 '유치원의 마음'을 이해해 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치원에 가는 것을 좋아해 줄 명분이 생긴 것 아닐까. (이 모든 것은 나의 추측이며 아이가 대답해 준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미주알고주알 글로 적지만, 말은 잘 안 하는 편이다. 아이가 나와 비슷한 성격을 물려받았다면, 나처럼 이야기로 위로받고 스스로의 글로 정리하며 성장해 나갈 것이라 믿어보아야겠다.
(p.s. 이 이야기가 나에게는 의미가 있어서 동화책을 만들어볼까 생각했는데, 플롯은 짜놓고 그림을 못 그려서 방치되어 있다. 혹시 관심 있으신 작가분 계시면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연락이 없으시면, 제가 언젠가 한 번 그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