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_빅윈(big win)의 추억
도박을 한 번도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빅윈(big win)의 추억" 때문이다.
빅윈은 말 그대로 크게 딴 것을 의미한다. 일상적인 일을 해서는 절대로 부풀려질 수 없는 큰돈. 그냥 조금 번 것이 아니라 엄청 많이 딴 것을 의미한다. 대체로 이런 일은 도박 초반에 발생하는데, 앞서 이야기한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 이에 해당된다.
대체 얼마나 크게 땄길래 그럴까? 과거 판을 깔고 하던 도박은 눈앞에 현금다발이 있거나 집문서가 있거나 (물론 나도 영화에서 본 그림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도박판 옆에는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액을 빌려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는 '실물'이 있어야 했지만, 지금 성행하는 온라인 불법 도박은 그런 것이 필요 없다. 어차피 법망에서 벗어났는데 어떻게 설계한다 한들 무슨 제지가 있으랴? 환자분들에게 물어보면 적게는 내기 원금의 500배에서 크게는 1500배까지 따 보았다고 한다. 만약 10만 원을 걸었다면 500 배면 5천만 원, 1500 배면 1억 5천만 원이다. 그야말로 '억'소리가 나는 돈이 내 것이 되었다가 한 순간에 잃기도 하는. 대부분은 화면 속에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숫자이지만, 그 숫자는 뇌에 엄청나게 강렬한 기억을 심어준다. 그야말로 인두로 가죽을 지지는 것과 같은, 그래서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기억이다.
(image by chatGPT)
아무리 다른 기억으로 덮고, 잊어보려고 애써도, 돈이 필요할 때, 돈이 많을 때, 기분이 좋을 때, 기분이 언짢을 때, 여하튼 도박과 관련된 아주 사소한 단서라고 있으면 바로 이 기억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야, 너 뭐 하면 되는지 알잖아."
빅윈은 엄청난 쾌감을 준다. 길을 가다가 천 원짜리를 주워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꽁돈이 갑자기, 전혀 예측하지 않게 생긴다면? 게다가 내가 무언가 노력해서 (내 통제 하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에너지와 자신감이 치솟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이때 뇌 속에서는 도파민이 엄청나게 상승한다. 도파민은 쾌감 호르몬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가 도파민을 느끼기 위해서 쾌락에 몰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도파민은 쾌락 행동이 예측될 때(단서(cue)라고 한다) 가장 크게 증가해서 그 행동을 다시 하도록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뇌 속에서 신경세포 간의 신호 전달을 돕는 호르몬을 신경전달물질이라고 한다)이다. 다시 말해, 도파민의 신호를 말로 해석하자면 "여기에 집중해!"이다. 쾌감을 주었던 기억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해마(hippocampus)에는 오래 남는 장기 기억이 형성되고, 편도체(amygdala)에는 당시의 감정이 강렬하게 각인된다. 단서가 나타나면 해마와 편도체가 과거의 강렬한 경험을 불러내고, 이는 보상을 예상하게 하는 도파민을 활성화하여 도박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갈망(craving))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대체 왜 벗어날 수 없냐고, 그렇게 많이 잃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으면서도 왜 또 도박판으로 달려가냐고 묻는다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빅윈의 추억이다. 이 한 방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한 번만 대박 터지만 모든 걱정이 말끔히 사라질 테니까. 이전만큼 많이 바라는 것도 아니라 그때의 반만 딱 터져주면 되니까. 그때도 그렇게 땄고, 또 될 것 같으니까. 인두에 지진 듯한 강렬한 기억과 강렬한 쾌감은 노력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 기억은 조금씩 희석되지만, 도박이 주던 강렬한 기대감을 다른 것이 대체하기 어려운 기간도 상당히 길게 이어진다. 도박을 중단한다는 것은, 도박이 줄 수 있는, 확실하고 강렬한 쾌감의 강렬한 유혹을 온몸으로 견뎌내는 것을 의미한다. 당사자가 견뎌내고 있다면 그 이유는 유혹에 굴복했을 때 잃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절대 안 된다는 절박감일 것이다. 당사자가 그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힘을 합쳐 나갈 수 있다.
오늘도 이 유혹을, 인두에 빨갛게 지진 강렬한 기억 앞에서 초연해지고자 애쓰는 당사자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