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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

6_습관이 되기 쉬운 환경(1): 스마트폰과 돈

by 마루마루

도박 자체의 중독성도 문제지만, 도박을 둘러싼 환경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처음 정신과 의사가 되었을 때 내가 만났던 도박자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일정한 자리를 잡은 성인이었다. 큰돈을 잃을 만큼 경제력이 있어야 했고, 도박을 하려면 도박판에 가거나 성인 PC방 같은 특정 장소를 찾아가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박은 큰 피해를 남기지만, 그때와 지금의 ‘접근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장 큰 변화는 역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밖에서 볼 때는 도박을 하는지, 웹서핑을 하는지 알 수도 없다. 화장실에 가서도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눈만 뜨고 있고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다면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환경이,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두에게 주어졌다.


도박과 관련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처음 도박을 접하는 나이는 평균 12.9세라고 한다. 물론 평균이 모든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이는 어린이, 청소년 시기에 도박을 만난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나이에게 무엇이 중요한가? 바로 또래다. 또래로부터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사회의 일원이 되는 자연스러운 발달 과제지만, 이를 얻기 위해 무모하고 위험한 행동을 불사하는 것도 10대의 특징이다. 주변에 갑자기 돈이 많아진 친구. 맛있는 것도 곧잘 사주고 또래들이 쉽게 살 수 없는 명품을 휘감고 다니며 주변의 선망을 받고 있다. 그 친구가 '나 이걸로 돈 벌었어'라며 보여주는 도박 사이트. 해보니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조금만 해봐도 금방 땄다. 친구가 돈을 빌려준다고 재미 삼아해 보라고 한다. 쉽게 빌려 쉽게 땄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착각이 강화되어, 이후의 손실은 더 큰 추격 도박으로 이어진다.


친구 중 한 명이 하면, 마치 유행처럼 번져서 다들 해보게 된다. 학창 시절 담배나 음주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정말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음주나 흡연을 해 보지 않았는가? 어른들이 절대 하지 말라는 행동일수록 그 나이에게는 묘하게 매력적이다.) 친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하고 있고, 안 하면 '쫄보''찐따''겁쟁이'라는 놀림을 받는다. 또래 사이에 끼기 위해서라도 한두 판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빅윈을 만난다면? 누구를 탓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술자리 문화와도 비슷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분위기를 모른다''어른(선배)이 주는 술을 이렇게 거절하면 안 된다'는 눈초리와 압박에 못 이겨 억지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술에 대해서는 이전보다 훨씬 자율성이 존중되고는 있지만, 10대의 도박은 '또래의 압박'을 외피로 입고 사정없이 다가온다.


게다가 돈을 구하기도 너무 쉬워졌다. 과거에는 10대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나? 10대들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도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10대에게는 돈이 너무 가까이 있다. 휴대폰 소액결제, 중고거래 (집안의 물건들을 내다 판다), 카드깡(친구들과 물건을 사고 현금으로 차액을 받으면 카드값은 부모가 내고 현금은 본인이 갖는 형태)과 같은 비교적 합법적인 돈부터, 부모의 카드에서 빼 쓰는 카드론, 내구제(고가의 가전과 같은 제품을 할부로 구매하고 판매업자에게 넘기면서 현금을 바로 받는 것. 당장 손에 현금은 남지만 할부 빚이 남는다.), 작업대출(대출 조건이 되지 않는데 서류를 조작해서 대출을 일으키고, 브로커가 막대한 수수료를 빼간다. 사기로 기소될 수 있다.), 중고사기(물건이 없는데 있는 척하며 대금을 받고 잠수), 고금리 사채, 일수까지. 10대의 도박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친구들 중 엄청난 금리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아이가 있다고 한다. 일 2%의 이자. 100만 원 빌리고 하루 2만 원을 이자로 낸다고 한다. 그러면 1년이면 700%의 이자, 원금은 100만 원인데 이자가 700만 원이다(단리 계산 시). 이렇게 '당장 손에 현금'을 쥐어주는 일들은 빨리 도박해서 만회해야겠다는 추격도박을 부추기지만, 결국은 막대한 빚만 남긴다.


스마트폰과 돈을 쉽게 구한다는 두 가지 맥락에서 최근 정말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장병 도박'이다. 인권 신장과 통신의 자유 맥락에서 군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병사들의 환경은 도박을 부추기기가 쉽다.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에 밖에 나가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평소 좋아했던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손 안의 스마트폰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세계에 하염없이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될 텐데, 거기서 우연히 도박을 만난다면? 경직된 환경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지루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줄 획기적인 아이템이 될 것이다. 게다가 병사들은 돈이 많다. 예전보다 급여가 많아졌지만, 이를 쓸 시간이 없어 고스란히 통장에 쌓인다. 게다가 군적금(정식명칭은 '장병 내일준비적금'이다)이라는 이름으로 군에서 따박따박 돈을 모으면 제대할 때는 적지 않은 목돈이 된다. 주변에 먼저 제대한 친구들에게 큰돈이 있고 (그리고 친구 간에 쉽게 빌려준다), 장병 역시도 매달 적금해서 적립한 돈이 있다. 이 돈의 존재는 '조금 잃어도 금방 만회할 수 있다'는 잘못된 판단을 부추긴다. 모든 병사가 도박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돈이라는 변화가 병사들을 도박에 취약하게 만든다.


도박을 한다고 모두가 도박 중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박은 본질적으로 중독성이 높기 때문에 '얼마나 쉽게 접할 수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환경이 도박을 쉽게 만들수록,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도박을 하기 쉽게 만드는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도박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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