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_습관이 되기 쉬운 환경(2)
습관이 되기 쉬운 두 번째 이유는 ‘돈‘에 대한 접근성이었다. 여기서 단순한 접근성 이상의, 돈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관념에 대해서도 한 번 짚고 싶다.
시중에 판매되는 자기 계발서는 똑똑한 빚을 지라고 부추긴다. 게다가 자기 일만 우직하게 하는 것은 미련하다고 비웃는다. N잡, 부업, 자기 계발, 투자. 자투리 시간도 허투루 쓰지 말고 종잣돈을 모으고, 레버리지를 일으켜 내가 잘 때도 자산이 일하게 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빨리 은퇴하라고 말한다. 주식, 코인, 부동산으로 부를 일군 사람들을 보면 열심히 일한 대가가 너무나도 하찮아 보인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나의 위치는 한없이 위태로워 보여 일만 열심히 해서도 안 되고, 주변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잘 살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다들 자기 집, 좋은 차, 여행, 명품, 사교육에 아낌없이 쓰고도 자산을 축적하고 노후를 완벽하게 대비하는 것 같다. 온갖 동영상에서 오늘도 갓생 루틴을 완벽하게 수행해 내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가난한 나를 비웃는 것 같다. 모두가 젊고 아름답게 부자가 되고 나는 흙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그런 삶은 요원해 보인다. 그런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대출이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사업자 대출, 담보대출, 신용대출, 대출의 종류도 다양하다. 똑똑한 빚을 져서 한 번에 대박을 일으켜서 너도 이 삶을 탈출하라고 부추긴다. “한 번에 대박”을 바라는 마음은 도박적인 삶의 방식을 부추긴다.
이번 판만 잘 되면 모든 걱정은 사라질 거야.
하지만 삶이 정말 한 판에 뒤바뀔 수 있을까? 도박판에서 1500배로 부푼 원금을 회수해서 영원하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이야기는 슬프게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종종 환자들에게 도박으로 번 돈을 환금하거나 수익을 남긴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 얼마간은 환금해서 명품도 사고 주변에 허세도 부리면서 쓰지만 대부분은 다시 도박판으로 돌아가고, 환금해서 산 명품도 되팔아 도박판으로 돌아가며, 도박 수익으로 한턱 쏜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도박판으로 들어간다.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진다. 이 당연한 인생의 이치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게 시대의 가장 큰 문제다.
한 번 시작한 도박이 습관이 되기 쉬운 세 번째 환경 요인은 기술 발전과 제도와 규제 간의 격차다. 기술 발전과 제도의 정비 사이에는 언제나 시차가 있다. 스마트폰이 우리 삶에 파고든 지 벌써 10년이 넘었지만, 스마트폰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서 성장에 필요한 놀이나 경험을 차단하는 '뻐꾸기알'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이제야 문제시되며 교내 스마트폰 사용 제약이나 SNS 사용 연령 제한이 법제화되었다. 하물며 음지에서 성행하는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대한 규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불법 도박사이트 근절을 외쳐도 대부분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인 경우가 많다. (도박자들도 똑똑한 편이지만,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정말 똑똑하다.) 환금이 되지 않아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말도 안 되는 손실과 막대한 부채를 껴안게 되어도 할 말이 없다. 불법 사채업자로부터의 불법적인 빚독촉인 것을 알아도 가족은 당당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애당초 불법 도박에 손을 댄 것이 내 자식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아이의 삶에 흠을 내게 될까 봐 두렵다. 그 아이가 미성년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차라리 내가 조용히 갚아주고 끝내면 아이의 삶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문제는 안으로 안으로 숨는다.
또한 과거처럼 도박장이 음지에 숨어있지 않다는 것,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도박의 도구라는 것도 도박을 규제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보는 게 당연한 시대다. 우리 아이의, 내 남편이 종일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그게 웹서핑인지, 웹툰인지, 쇼츠인지, SNS인지, 쇼핑인지, 커뮤니티인지, 주식이나 코인인지, 불법 도박사이트인지 알 수가 없다. 그 화면 안에서 뭘 하는지 알고자 하는 건 사생활 침범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사회에 퍼져 있다.
이렇듯 도박은 도박 자체의 중독성(끊기 어렵게 만드는 힘)을 넘어 도박을 하기 쉽게 만드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사회에 만연해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어리고 젊은 사람들과 그의 가족으로 확장되었다.
도박이 도박자만의 문제인가? 도박자의 의지가 약해서, 도박자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려서 도박을 못 끊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집안의 간식거리부터 치워야 한다. 식사와 식사 사이, 자기 전에는 출출하기 마련이다. 먹을 게 당장 눈앞에 없어도 '나가서 사 올까?' '배달시킬까?' 하는 마음이 간절한데, 눈에 보이는 간식거리를 거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도박을 하지 말아야지 굳게 마음먹어도, 도박을 하던 물건과 환경(돈과 스마트폰)이 도처에 깔려있는데 거절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도박을 하지 않으려면 도박을 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나의 환경은 어떠한가? 도박이 습관화되기 쉬운, 도박을 부추기는 환경인가? 과연 이 환경에서 나는 도박을 멈출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