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

8_도박이 습관이 되면?

by 마루마루

사람들은 어떻게 도박을 시작하게 될까?


"난 오늘부터 도박해서 큰돈 벌 거야."라며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 첫 시작은 먼저 도박을 한 다른 친구의 권유이다.


"이거 재밌는데 같이 할래?"

"금방 땄어. 너도 딸 수 있을걸?"


그 친구가 도박의 총판이었을 수도 있고 (사실 다단계나 다름없다), 아니면 그 친구 역시 다른 친구의 권유로 해보고 재밌어서 추천한 것일 수도 있다. 담배나 술이나 마약이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특히 10대라면 또래의 권유와 '너 이것도 못하냐? 완전 겁쟁이네'라는 식의 은근한 압박을 거절하기가 정말 어렵다.


처음에는 오락과 친목을 목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빅윈(big win)'을 경험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 경험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난번에 5천 원 넣고 5만 원 땄는데, 5만 원 넣으면 50만 원 되지 않을까, 50만 원 되면 엄마한테 용돈을 조를 필요가 없는데. 그 50만 원 넣으면 500만 원 될 텐데.'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제는 누가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입금하고 도박판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런데 초심자의 운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다. 이번에 건 5만 원은 고스란히 잃었다. 재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잊으려 했는데, 억울하고 짜증이 나서 잊히질 않는다. '이번 주 용돈이었는데, 딱 본전만 만회해야지!' 하고 친구에게 5만 원을 빌린다. 그 5만 원도 모두 탕진한다. 친구는 5만 원 언제 갚을 거냐고 독촉한다. 집에 엄마가 안 쓰는 것 같은 가전을 몰래 팔아서 5만 원을 만들었다. 5만 원을 갚으려니 내가 잃은 5만 원도 생각난다. 이걸로 딱 한판만 해서 본전만 찾자 했는데 중고 거래로 만들어낸 5만 원도 잃는다. 내 용돈 5만 원, 친구에게 빌린 5만 원, 중고 거래 5만 원 (심지어 엄마가 갑자기 그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다시 중고로 사 와야 한다.) 총 15만 원을 만회해야 한다. 5만 원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 마침 갖고 있던 엄마 카드를 현금인출기에 넣고 혹시나 해서 비밀번호를 넣어보니 돈이 나온다. 15만 원. 이 15만 원으로 딱 2배만 하자. 10배는 너무 욕심이 과했으니까. 30만 원 만들어서 모든 빚 갚고 이제 다시는 안 할 거야. 했는데...


습관적인 도박의 종착점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이다. 대체로 본전을 만회하기 위해 목표 수익률을 낮추는데, 그 과정에서 판돈이 커지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판돈은 빚으로 충당된다. 빚은 늘어가지만 갚을 수가 없어지면, 고민이 깊어지고 예민해지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표정이 어둡고 자꾸 방에 혼자 숨으려 한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무슨 일 있니? 표정이 왜 이렇게 어둡니?'라고 물어도 무표정하게 '아무 일도 아니야'라고 답하고, 조금 더 캐물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왜 그래!' 하며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다. 돈 걱정이 늘고 돈에 예민해져서 사소한 돈 이슈로 싸운다. 자꾸 돈을 달라고 한다. (청소년 도박의 가장 흔한 초기 징후는 대부분 '이유 없이 돈을 달라고 해요'다.)


그렇게 빚이 커지고 커져 눈덩이처럼 불어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시점에 '터진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도박자가 이 타이밍을 '터진다'라고 표현한다.) 부모님 앞에 가서 엉엉 울며 잘못했다고 그간의 일들을 이실직고한다. 모두가 부둥켜 울고 속상해한다.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며 갚아주신다.



이 이야기는 가상의 사례지만, 도박자의 가정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겪는 패턴이다. 우리 아이가 나쁜 친구를 만나서 여기까지 온 걸까? 물론 도박을 권한 친구를 좋은 친구라고 하기는 어렵다. (추천을 통한 포인트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도 운 좋게 돈 벌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에 친구에게 추천한 것일 수도 있다. 같이 재밌게 놀고 싶어서.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재밌는 놀이의 끝은 무엇인가?


습관적인 도박은 어디까지가 사교와 친목 목적의 도박인지, 어디서부터가 도박 중독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중독은 나쁜 습관의 극단적인 형태다. 하지만 그 극단은 '나쁜 습관'과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조절할 수 없음'이다. 여기까지 하고 멈춰야지, 하는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중독의 특성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바로 이야기할 것이다.)



도박사이트 운영자가 좋아하는 도박자는 다음 중 어떤 유형일까?

① 한 번에 왕창 거는 사람

② 조금씩 자주 거는 사람


정답은 ②이다. (도박사이트 운영자에게 직접 들은 답이므로 신뢰해도 좋다!) 조금씩 자주 거는 사람은 자신의 총 베팅액을 잘 모른다. 그리고 적은 금액이니 괜찮다고 생각해서 자주 한다. 자주 하는 행동은 습관이 되기 쉽다. 습관이 되면 의식적으로 '할까 말까'를 의식적으로 판단을 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행동한다. 많은 중독자들이 "왜 술을 마셨는가, 왜 도박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습관적"이라고 답한다. 습관은 무섭다.


내가 지금 내기에 건 5천 원, 1만 원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