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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자와 도박자를 위한 가이드

9_도박장애라는 진단에 대하여

by 마루마루

앞선 글에서 도박은 본질적으로 중독성(끊기 어렵게 만드는 힘)이 강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쁜 습관과 '중독'은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중독'이라는 진단에는 어떤 성질이 포함될까?


중독은 중독 대상(물질이나 행위)에 대한 조절력을 상실해서(loss of control), 일상생활에 문제가 발생하는데(adverse consequences), 이는 갈망(craving)을 동반한다. 갈망이란 도박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인데, 때로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쓰나미처럼 몰려들고, 정신 차려보면 이미 도박하고 있는 상황인 경우도 많다. 즉 갈망이 갈망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기준에 사용되는 미국 진단기준 및 통계 편람 (DSM-5)에서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의 진단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내성: 판돈이 늘고, 더 회전이 빠른 도박을 찾는다. (회전이 빠름 = 중독성 높음)

2. 금단: 안 하거나 못 하면 불안, 안절부절, 짜증 등의 불쾌한 감정을 경험한다.

3. 조절실패: 이만큼만 해야지, 여기까지 하고 그만해야지, 와 같은 약속을 번번이 어긴다.

4. 집착: 도박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나 도박 경험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5. 회피성 도박: 불쾌한 감정(무력감, 죄책감, 불안, 우울 등)을 피하기 위해 도박을 한다.

6. 추격도박: 도박으로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 도박을 한다.

7. 거짓말: 도박에 빠진 정도를 숨기기 위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8. 부정적인 결과: 대인관계, 학업과 직장 생활, 건강 등 다양한 부정적인 일상 문제가 발생한다.

9. 채무: 도박을 위해 무리한 빚을 진다.


이 기준을 설명하면 가장 많이 공감하는 항목은 내성, 추격도박, 채무, 거짓말이다.


(참고로 DSM-5에 의거하여 도박장애로 진단을 하려면, 위에 언급한 9가지 중 4가지 이상을, 지난 12개월간 충족해야 한다. 기간이 있는 것은, 도박이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으로 나타나는 뇌의 변화가 있는 '질병'으로 진단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12개월간 이런 일이 대체 얼마나 반복되어야 하나. 만약 내가 가족이라면 12개월이 하염없이 길 것 같다.)


진료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단기준은 '거짓말'이다. 도박뿐 아니라 알코올, 마약과 같은 물질에 중독된 사람들도 대부분 거짓말을 한다. 얼마나 마셨는지, 얼마나 약을 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었는지를 축소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물질중독의 진단기준에 거짓말은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물질중독은 거짓말을 해도 외관상 알 수 있는 '취한' 증상이 있어 쉽게 거짓말을 구별할 수 있지만, 도박중독은 외관상 알 수 있는 증상이 없고, 말(거짓말)이 아니고는 거의 알아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짓말은 도박을 유지하고 숨기는 핵심 특징이다.

2. 도박장애에서 돈은 도박의 목적이자 도구이다. 도박자는 사라진 돈의 행방을 설명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으며, 거짓말은 도박을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3. 도박이 병이라는 인식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대부분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따라서 수치심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더 쉽게 한다.


거짓말이 반복되며 일상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야말로 밥 먹듯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는 중독의 병리가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만큼 전두엽에서 거짓말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도 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고, 일단 방어적인 거짓말을 해두고 나중에 수습해야 할 정도로 뇌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기 때문이다. 밥 먹었니,라는 질문에 밥을 먹었어도 안 먹었다고 대답하고, 여기 온 적 있니,라는 질문에 온 적이 있어도 전혀 없다고 대답한다. 밥을 먹었다 대답해도, 온 적 있다고 대답해도 전혀 무해한 상황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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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rated by Gemini Nanobanana)


이러한 거짓말의 결과, 도박자는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의 신뢰를 잃게 된다.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알 것이다. 처음에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돕기 위해 왔지만, 나중에 진짜 위기가 왔을 때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신뢰를 잃는다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도박에서 벗어날 때 더 뼈저리게 느낀다. 신뢰가 회복되지 않아 고통스럽고, 믿을 수 없어서 고통스럽다.


그래서 회복의 첫 번째 원칙은 언제나 '정직'을 지향하는 것이다.


정직하지 않으면 단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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