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

10_왜 거짓말을 하게 될까?

by 마루마루

거짓말이라는 도덕적 잣대가 진단기준에 들어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도박뿐 아니라 알코올, 마약과 같은 물질에 중독된 사람들도 대부분 거짓말을 많이 한다. 얼마나 마셨는지, 얼마나 약을 했는지, 그로 인해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었는지를 숨기거나 축소하곤 한다. 그래서 가족과 당사자가 진료실에 같이 들어오면 두 주체의 보고가 상당히 다르다. 가족이 이야기할 때 당사자는 가족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짜증을 낸다.


앞서 도박중독에서 '거짓말'이라는 항목이 진단기준에 들어간 이유는 거짓말이 도박을 유지하게 하는 핵심 증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거짓말은 중독이라는 병의 진행 정도를 나타내며, 이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기능 저하를 의미하는 증상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성격이 파탄나서가 아니라, 병의 증상으로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이 핵심 증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은 도박 외의 물질중독도 공통적인 부분인데 바로 '조절망상' 때문이다. 조절망상이라는 것은 '내가 언제든 멈출 수 있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따'는 잘못된 믿음(망상=false belief)이다. 이는 내가 알아서, 정해진 만큼, 적당히 도박을 하고, 이로 인해 생활의 문제(과도한 빚)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통제력 착각이다. 도박은 본질적으로 결과를 자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임에도 교묘한 방법으로 도박자에게 통제력 착각을 심어준다. 여타 물질중독은 '이만큼만 마시고 멈출 수 있을 거야' '조절할 수 있을 거야'라는 형태로 조절망상이 나타난다면, 도박은 '5000만 원 잃었지만 6000만 원 따서 본전을 만회하고 그간 고생한 가족들에게 보상도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반드시 딸 수 있다'는 형태에 가깝다. 이것이 잘못된 믿음인 이유는 결국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이런 조절망상이 생길까?


첫 번째는 도박이 주는 과도한 보상을 계속 얻고 싶은 뇌가 도박을 계속하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논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는 도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여기에 맞는 이유를 짜 맞추는 '중독성 사고'다.

두 번째는, 그간 본인이 해왔던 일(도박)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함으로써 직면하게 될 수치심과 자기혐오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간 옳다고 생각하고 해 왔던 일들이 아니라는 현실에 직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충격적이다. 하지만 중독은 충격의 강도가 더 강렬한데, 그 이유는 중독 현장에서 직면은 '굴욕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고 발버둥 치는데,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못 이겨, 혹은 자살 시도로 주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상담에 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는 나의 의지와 의사가 존중받지 못한, 인간적으로 대우받지 못했다는 분노를 유발한다.




뇌는 변화를 싫어하고, 비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말이다. 뇌가 자신을 보호하고자 만든 방어기제가 오히려 인격 전체를 손상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래서 중독에서 벗어날 때는 친절함도움 요청이 필요하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듣는지에 따라 다르게 스며든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하는 방법을 의도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친절함은 현실을 직면할 용기를 주지만 스며들기까지는 오래 걸린다. 너무 오래 걸린다고 가족은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도박의 폐해가 하루 만에 발생한 일이 아니듯, 도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하루 만에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도박에서의 대박을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가족부터, 그리고 당사자 역시 '대박'을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도움을 받는 것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 혹은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이 정도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도박자나 가족의 마음에 뿌리 깊기 때문이다. 많은 가족들이 원가족 (대체로 부모와 배우자 정도) 안에서만 문제를 공유하는데, 이는 예기치 못한 불상사를 유발한다. 자녀가 도박자인데 조부모에게 민망해서 말하지 못하는 부모가 매우 많다. 그러면 자녀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돈을 빌린다. 때로는 사정을 모르는 조부모가 선심에 건넨 용돈이 도박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첫걸음은 문제를 공개하는 것이다. 속으로 곪은 상처를 치료하려면 결국 피부를 절개해야 하듯이, 문제가 오픈되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남몰래 인터넷 검색, 챗지피티에게 물어봐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반복되는 거짓말 앞에서 가족은 당황스럽고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폐렴 환자가 기침을 하듯, 도박자에게 거짓말은 증상이다. 즉 거짓말은 당신을 미워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기침하듯 한 것이다. 거짓말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질병이 내뱉는 '기침'으로 이해하려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증상으로 한 거짓말에 거짓말로 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몰래 빚을 갚아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채권자를 만나 담판을 지어주는 것은 가족이 하는 거짓말이다. 폐렴으로 기침을 많이 하면 따뜻한 물과 약을 먹고 쉬는 것은 폐렴 환자가 해야 할 몫이다. 도박자가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의 결과를 수습하는 것은 도박자의 몫이다. 이것을 구분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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