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자와 도박자의 가족을 위한 가이드

11_단절

by 마루마루

우리는 세상에서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가장 가까운 관계는 가족일 것이다.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한 부모와 형제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단단히 묶여 있다.

그다음은 사회 공동체이다. 어려서 다니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 학원, 교회와 같은 종교단체, 이 외의 확장된 관계를 맺는 다양한 공동체가 있다.

그다음은 사회 전반이다. 이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지구라는 행성. 우리의 삶이 사소한 듯 보여도, 우리의 말과 행동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때로는 그 영향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우주의 일부이다. 우리가 우주 만물의 일부, 자연의 섭리 중 하나라는 것을 느끼는 감각을 소위 영성(spirituality)라고 한다. (영성의 사전적 정의는 다양하고, 그중 하나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우주의 장대한 역사 속, 기껏해야 80년 남짓을 살고 떠나는 우리의 존재는 미미하다는 표현마저 아까울 정도로 미세하다. 하지만 그 80년이 전 세대와 후 세대를 잇는 연결고리이고 (자식을 낳건 낳지 않건 상관없다), 우리의 작은 몸짓이 미치는 영향력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주 만물, 자연, 온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의 몸이라는 외형을 지닌 우리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내가 나와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 낯설게 들릴 수 있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게 작동하는지 생각해 보자. 내가 행동하는 것 같아도, 나도 모르게 나에게 영향력을 준 외부 인자의 압력의 결과일 수 있다. 나도 모르게 '또 해버렸다' 하는 일도 수없이 많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정말 깊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 또한 난해한 질문이다. 자신과 사이가 좋은 사람도 있지만, 자기 자신과 사이가 나쁜 사람도 있다. 자신을 미워하다 못해 혐오하고, 태어난 것을 증오하기도 한다. 내가 나와 맺는 관계의 방식은 나와 가족, 공동체, 사회, 우주 전반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나와 나의 관계는 살면서 계속 변화한다. 외적인 상황, 내면의 변화, 다양한 운과 우연이 겹쳐 당신은 당신을 만나고, 우리는 이 글을 통해 만난 것이다.


관계 이야기를 이토록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도박이 모든 '관계'를 단절시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친구 따라, 재미로 시작한 도박이 멈추지 못하면 거짓말이 쌓이고 골방에 틀어박히게 된다. 가족이 문을 열어달라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다. 직장이나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는다. 공동체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돈을 빌렸기 때문에 갚을 수 없어서 나갈 수가 없다. 사회에서는 빚독촉을 계속 받다 보면 핸드폰을 끄게 되고 연락을 무시하게 된다. 밖에 나가보면 사람들은 다들 잘 사는 것 같고 나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사람들이 다들 내 도박을 아는 것 같아 나가는 게 싫고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나라는 존재가 잘못된 것 같고, 잘못 태어난 것 같고, 세상이나 소중한 사람들에게 해만 끼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나와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원했는지, 어떻게 살기를 바라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몽땅 잊어버린다. 오로지 도박하는 기계가 되어 무한히 스크린을 누르고, 돈을 구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마다하지 않는다.


도박은 돈도 잃게 하고 사회적 지위를 추락시키지만, 사실 도박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모든 관계로부터의 단절'이다.


나의 도박은 어떠했는가? 어떤 관계로부터 어떻게 나를 단절시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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