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_도박이 모두에게 치명적인 이유
도박에 대해 당사자나 가족이 가장 곤란한 부분은 빚이다. 빚은 매일 차곡차곡 이자가 쌓인다. 도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금방 이뤄지는 일이 아닌 데다가, 이제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노동을 해서 빚을 갚으려 해도 시간이 필요하다. 월급은 한 달에 한 번, 주급은 일 주에 한 번, 일급은 하루에 한 번 나오지만 도박은 매시간 매초 우리에게 '네가 한 판만 하면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어'라는 유혹의 손길을 보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빚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거짓말이다. 그 이유는 도박에서의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속았다"
"또 당했다"
"믿은 내가 바보지"
가족들은 배신감에 치를 떤다. 이 거짓말이 나에게 또 상처 주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 믿음으로써 굴욕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자기 보호 본능이 발동한다. 다치 상처받을까 봐 불안하다. 그래서 도박자가 잘 지내는 것 같아도 불안하고, 못 지내는 것 같아도 언제나 불안하다. 불안을 잠재우려고 통제한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금만 낌새가 이상해도 '너 도박했지!'하고 다그친다. (하지만 슬프게도 이런 직감이 맞을 때가 종종 있다. 핵심은 직감이 맞아 도박자가 도박을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있다.)
도박자는 그간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 미안하고 (빚까지 모두 갚아줘서 고마워서) 가족의 요구에 순순히 따르지만, 외적인 통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머지않아 도박자는 통제당하는 것이 싫고 답답해진다.
"이 정도면 잘 해내고 있는데 왜 아직도 난리야"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라는 거야"
"아 정말 짜증 나"
그다음 순간에 나도 모르게 다시 도박을 하고 있다.
조만간 도박은 모두 밝혀지고 가족의 자기 충족적 예언(self-fulfilment prophecy: 기대했던 대로 결과가 나와 예언이 맞아떨어지는 상황)이 적중한다.
"그러면 그렇지"
"이번에도 속았다"
"믿은 내가 바보지"
가족의 불안과 통제 욕구가 더 거세지고, 이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도박자는 더 발버둥 친다. 이렇게 거짓말과 불안, 통제는 서로가 서로의 먹이가 되어 계속 데굴데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도박자들이 치료를 통해 바라는 것은 대부분 '신뢰 회복'이다. 양치기 소년에서 벗어나고 싶다. 내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떳떳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시간이 금방 오지는 않는다.
나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지키며 하루하루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회복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가족들의 눈빛은 여전히 불안해 보인다. 편안하지 않고, 걱정이 깊어 보인다.
때로는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후에도 불안과 의심의 눈빛을 마주할 수도 있다. 정말 짜증이 난다.
가족 입장은 어떨까?
불신을 안고 사는 것은 정말 괴롭다. 사랑하는 가족을 믿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다. 가족도 편하게 믿고 싶다. 이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다. 하지만 그동안 속아온 시간들, 그로 인해 상처받고 다친 마음은 경계를 낮추지 말라고 계속 경고음을 울린다. 조금만 표정이 좋지 않아도 '도박했을지도 몰라' 하며 새빨간 알람을 땡땡땡 울린다. 화재경보기보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마음은 어떨까. 실제로 많은 가족들이 불안장애로 진단받고 약물 처방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우울이나 불안으로 온 환자들도 이야기를 듣다 보면 중독자의 가족인 경우가 매우 많다.
게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곤란함과 이로 인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 사람의 도박만 아니었어도 내 삶은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텐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왜 그때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왜. 왜. 왜.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예민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은 끊임없는 통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시도 때도 없이 경고음이 울리고 통제욕구가 고개를 쳐드는 마음이 정말 편할까?
가족이 신뢰를 회복하는 데 드는 시간은 도박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 수도 있다. 그 시간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사는 것은 가족에게도 절대 편한 일이 아니다. 이 길고 긴 터널을 지나가는 것이 회복의 여정이다. 이 시간은 내가 생각하고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길 테지만, 나를 다시 믿어준 가족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터널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기다리고 버티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버틸만해지고, 훨씬 살만해질 것이다. 정말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정말 해낼 수 있다.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이다음부터는 그 이야기를 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