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_"빨리"의 비극
많은 가족의 희망은 이렇습니다.
“빨리 직장으로,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빨리 정신 차렸으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며 빚을 갚아줍니다. 빚에 짓눌려 삶이 무너질까 걱정되는 마음에, 가족은 서둘러 빚을 대신 갚아주곤 합니다.
하지만 도박 문제는 결코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가벼운 재미로 시작해 생활비를 손대고, 결국 타인의 돈까지 끌어 쓰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게 생긴 돈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당장 눈앞의 숫자인 '빚'은 지워줄 수 있어도, 도박에 물든 '사고방식'까지 단번에 지워줄 수는 없습니다.
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서 배포하는 <희망안내서>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장’ ‘한 번에’ 채무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대박을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박의 뿌리에는 ‘한탕주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기까지 수천 번 넘어지고, 걸어도 여기저기 부딪히며, 양발로 넘어지지 않게 뛰어다닐 때까지도 수개월이 걸립니다. 그러다가 가끔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 삶은 결코 한 방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쉽게 얻은 돈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도박장에서 번 돈은 도박장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빨리의 비극이 이것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돕고 싶어서 한 일이 결국 나를 향한 비수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잘 되라고 갚아주었는데, 이렇게 하면 학교에 돌아가겠다고 해서 무리해서 해결해 준 일인데 말입니다.
도박의 사슬을 끊으려면 자신의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며 빚을 스스로 갚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도박장에서 몇백만 원, 몇천만 원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단돈 몇 천 원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도박을 하다 보면 금전 관념이 왜곡됩니다. 돈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게 됩니다. 내가 벌어서 갚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은 돈의 무게를 실감하는 일입니다. 화면 속의 가상 숫자일 뿐이던 '큰돈'의 무게를, 땀 흘려 번 '작은 돈'의 소중함을 통해 현실적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도박자는 스스로 갚는 것의 필요성까지는 인정하지만, 최대한 빨리 갚고 싶어 합니다. 의욕이 앞서 생활비를 극단으로 줄이는 무리한 상환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삶은 언제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갑니다. 갑자기 아플 수도 있고, 사고가 생길 수도 있고,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삶에서는 언제나 ‘비상금’과 ‘예비자금’이 필요합니다. 또한 빚을 갚아가는 기간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 시간을 견뎌내려면 그 안에 소소한 즐거움도 있어야 하고, 해온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있어야 합니다. 숨 쉴 틈 없는 압박은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자연스럽게 ‘이렇게 해서 언제 빚을 갚나’ 답답해지고, ‘에라이 모르겠다’ ‘딱 2배만 때서 그걸로 조금이라도 더 갚아야지’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생활비와 약간의 여유자금을 위한 저축, 장기 적금을 병행하여 중간중간 위기에 대처하고 보상을 주며 그 시간을 헤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도박에 빠져들 때까지 시간이 걸린 것처럼, 도박에서 빠져나올 때도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현실적인 계획과 함께, 천천히 그리고 확실한 회복의 길로 걸어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