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_일을 한다는데 스마트폰을 만들어주면 안 될까요?
"아이가 직장에서 일을 하려니 스마트폰이 필요한데, 만들어주면 안 될까요?"
"일을 해서 빚을 갚아나가는 게 치료라고 배웠습니다."
"이 일을 못 잡으면 아이 자존감이 영영 바닥이 될 것 같은데, 이번만 안 될까요?"
이 질문은 "빚을 갚아주면 안 될까요?"와 비슷하다.
왜 스마트폰을 만들어달라고 하는가?
의식적인 이유는 직장 생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실제로 직장 생활에 도움이 되고, 어떤 직장에서는 사내 메신저를 비롯한 다양한 스마트폰을 활용한 업무가 매우 빈번하다. 하지만 '모든' 직장이 그런 것은 아니다. 전화와 문자만 되는 핸드폰만으로도 충분히 일을 해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번거로울 때가 많다. 전 국민이 쓰는 메신저 애플리케이션부터 시작해서, 은행 업무(정산 포함), 사진 촬영(업무 보고용), 문서 읽기, 내비게이션 등 많은 업무 기능을 하나의 기기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24시간 중 이러한 업무에 사용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전체 사용 시간의 압도적인 양은 그저 오락인 경우가 많다. 동영상, 게임, 웹서핑, 커뮤니티 글 읽기, 그리고 도박.
스마트폰은 강력한 도박 환경이다. 요즘 도박은 99%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기 때문이다.
견물생심.
계속 손에 쥐고 있고, 할 수 있는데 안 하기는 정말 어렵다. 안 그래도 도박 때문에 조절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활성도가 저하되어 있는 상태에서, 손 안의 스마트폰을 이전보다 더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을까?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셈이다.
도박자의 강한 의지를 믿지 않는가? 적어도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그렇다. 도박자가 단도박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재발은 도박자가 의지가 나약해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냥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동영상 사이트의 알고리즘에서, 자동으로 뜨는 배너에서, 무심코 읽었던 기사 글에서 (어쩌면 이런 글조차 자극이 될 수 있다), 단톡방에서 의미 없는 일상 대화에서, 커뮤니티 글에서, 알게 모르게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쌓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방아쇠 하나가 약하게 탕 울렸을 뿐인데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도박자에게 단도박의 강한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를 사용하여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이토록 도박자나 가족이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 이유는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집착의 정도가 강할수록, 불편함의 정도가 강하다고 보면 된다.
뭐가 불편한가? 일을 못 해서? 절대 아니다.
스마트폰 없이 보내는 시간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10~20대는 스마트폰 없이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공기가 없는 우주에 산소통 달랑 하나 메고 둥실 내쳐지는 기분일 수도 있다. 산소통에 산소는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언제 갑자기 모든 인내심이 바닥날지 모르고, 언제 갑자기 불안과 분노가 치밀어 산소를 과량 사용해 버리게 될까 두렵다. 스마트폰 없는 시간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못해 공포스럽다.
두 번째 이유는 '도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도박이 여간 번거로워진다. 물론 이런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도 해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돈과 스마트폰이 통제되면 도박을 하지 '못한다.' 도박을 못 하는 것은 삶의 유일한 즐거움과 낙이 통째로 사라지는 기분일 것이다. '조절할 수 있는 선에서 하면 되지'라는 마음은 도박자의 마음을 언제나 유혹한다.
세 번째 이유는 '가족의 불안'이다.
스마트폰 없이 다니는 우리 아이가 어딘가 부족해 보이지 않을까? 일하는 데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정말 좋은 직장에 합격했는데, 이번에 안 되면 아이가 영영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평생 그 일로 나를 원망하면 어떡하지?
이 질문을 잘게 쪼개어 답을 해 보겠다. (많이 차가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답하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에 양해를 구한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분명 어색해 보이긴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시기이다. 일하는 데 당연히 불편하다. 주변에서 '넌 왜 스마트폰 없어?'라고 물어볼 것이고, 그에 대한 답변도 준비해야 한다.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 안 되면 영영 못 일어날 정도로 나약한 아이로 키웠는가? 그렇다면 다시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나 부모의 비호 아래 아이가 사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 살 수 있게 준비시켜야 한다. 넘어지면 아프지만, 결국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스마트폰을 해주지 않은 일로 평생 부모를 원망할 정도라면 단도박이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저지른 문제의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가 문제다. 거기서부터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그러려면 결국 일이라는 핑계로 스마트폰을 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기지 않도록 부모는 철저해야 한다.
내가 불안해서, 내가 원망 듣고 싶지 않아서, 내가 견딜 수 없어서 스마트폰을 다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스마트폰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어떤 미래를 만나더라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질문에 대한 회복 당사자의 말을 빌려서 답을 해 보겠다.
"아버지, 그렇게 스마트폰 해주시고 직장 구하면 반드시 재발합니다."
"저도 똑같았어요. 그렇게 해서 재발하고, 재발하기를 백 번도 넘게 반복했습니다."
"지금은 그 직장을 포기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타격이 커 보이겠지만 결국 그게 회복의 길이더라고요."
강의 중에 본인의 경험을 솔직하게 공유해 주시고 의사가 할 수 없는 조언을 주신 당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당신의 회복이 우리 모두의 희망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