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마루 Jan 04. 2022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보복하지 말고 살아남아

  마루는 무럭무럭 자란다. 눕기만 하던 녀석이 뒤집을 수 있게 되고, 배밀이를 하고, 기어가고, 잡고 일어난다. 손으로 움켜쥐다가 손가락으로 잡기 시작한다 (떡튀밥을 혼자 잡았을 때의 경이로움이란!). 대상을 움켜쥐고 잡아당기거나 마구 흔들기도 한다. 아기 입장에서는 애정 표현인 셈인데, 당하는 입장에서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첫 번째 대상은 고양이다. 구구는 일단 귀엽고 네 다리로 움직이고 사뿐사뿐 점프도 하니 마루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마루는 구구를 쫓아다닌다. 구구는 마루의 손길은 거부하면서도 멀리 가지는 않는다. 마루는 구구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구구를 마구 쥐어뜯는다. 구구 밥도 맛있어 보이는지 호시탐탐 뺏어 먹을 기회를 노린다. 마루의 손을 잡고 ‘구구 예쁘다’하며 부드럽게 쓰다듬는 법을 가르쳐준다. 마루는 아직 힘 조절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예쁘다’는 신호로 구구를 팡 친다. 구구 깜놀. 순하고 늙은 고양이 구구는 마루에게 보복하지 않는다. 쟤는 어린 인간이라 아직 덜 됐군, 하는 표정이다. 하악질도 하지 않고, 발톱으로 긁거나 냥펀치를 날리지도 않는다.


  두 번째 대상은 엄마다. 항상 같이 있고 가까이 있으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기 때문에 엄마를 쫓아다닌다. 쫓아와서 아무 데나 움켜쥔다. 머리카락이기도 하고, 손이나 발이기도 하다. 때로는 입으로 앙 문다.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이로 온 힘을 다해서 엄마의 어깨를 문다. 또 기다란 물건을 좋아하는 마루는 효자손을 마구 휘두른다. 그러다가 한 대 얻어맞으면 꽤 얼얼하다. 하지만 나는 구구만큼 차분하지는 못해서 순간 욱하고 화가 난다. 네 이 녀석, 하고 한 번 미간에 주름 한 번 팍 준다. 물론 마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내 내가 웃을 걸 알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공격성이란 내재된 것일까? 정신분석 영역에서 공격성에 대해 학파마다 의견이 크게 갈린다. 공격성(과 성욕)을 타고났다고 하는 학파도 있고, 1차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파도 있다. 동양 철학에서도 성선설과 성악설이 갈린다. 뭐가 옳은지는 신의 영역이고 각자 자신의 경험에 따라 믿음도 다르겠지만, 나는 일부 타고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격성은 일종의 생존 에너지이다. 배가 고프다고 상대방에게 들릴 정도로 크게 울어야 한다. 기저귀가 축축하거나 어디가 아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를 먹으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먹어야 한다는 에너지. 그 에너지는 공격성과 맞닿아있다. 입 주변에 젖꼭지가 닿았을 때 탐색해서 입에 무는 것은 그야말로 유전자에 각인되지 않았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일 것이다.


  그렇기에 마루의 공격성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나 구구 입장에서는 아프고 짜증 난다. 하지만 그 공격성에 보복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아기가 악의를 가지고 상대를 해치려 하는 행동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녀석이 날 얕보고 골탕 먹이려 하나’싶은 마음이 든다. 이것도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해도 내가 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비록 아야,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지를지언정 보복하지 말고 살아남자. 그리고 마루가 커 갈수록 이 마음을 꼭 기억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정신과 의사지만 엄마는 처음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